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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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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85.망초대
지집사가 또 울먹이며 기도를 했다.
며칠인지 모르고 장마가 지고 또 빗속 주일을 맞아 예배드릴 때, 지집사 기도는 눈물이 반이었고 반은 탄식이었다.
“하나님 모든 게 절단 나고 말았습니다. 무 당근은 썩어가고 밭의 깨는 짓물러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불어난 물에 강가 밭이 잠기기도 했고, 그칠 줄 모르는 비, 기껏 자라 팔 때가 된 당근은 뿌리부터 썩기 시작해 팔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제법 많은 당근 밭을 없는 선금 주고 미리 사들인 부론의 오빠가 몸져 앓아누운 데다가 송아지 날 때가 지났는데도 아무 기미가 없어 알아보니 새끼를 가질 수 없는 소라는 우울한 판정을 받은 것이 곡식 절단 난 것과 맛물려 지집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참을 더 탄식하던 기도는 올해는 그랬지만 내년엔 잘되게 해달라는 기원으로 끝났다.
보름 이상 샘골로 일 나가 있던 광철씨가 오랜만에 돌아와 자리를 같이 했다. 빗속, 그래도 무슨 일 부탁 받았는지 빈 지게를 교회 마당에 세워둔 채 젖은 몸으로 앞자리에 앉았다. 광철씨는 언제나 지게를 벗을 수 있는 건지. 최소한 남의 짐 아닌 자기 짐을 질 수 있는 건지.
아픈 다리를 한쪽으로 뻗고 앉은 기봉씨가 고개를 숙이고 풍금 앞에 앉았다. 자꾸 눈이 그리로 갔다. 부인이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지두 주일이 넘는다.
슬픈 사람이 슬픈 삶을 살다 슬픈 사람끼리 우연처럼 만나 슬픔을 나누다 또 훌쩍 떠나고 말았다.
요즘 기봉씨는 부론이며 원주며 멀리 여주까지 부인 찾는 일에 농사는 뒷전이다. 익숙한 모습이지만 고개 속인 그 모습이 예전 같지만은 않다.
비어 있을 때도 많은 제단 항아리 화분엔 흰 망초대가 가득하다. 길가 풀섶 어디나 흔하디 흔한 꽃, 땅이 묵으면, 집이 묵으면 묵는 곳 구별해 표시라도 해 두려는 듯 제일 먼저 자라 오르는 망초대.
경림이와 은희는 무슨 맘으로 그 꽃을 꺾어 바쳤을까? 싫도록 내리는 빗속, 제단에 놓인 망초대와 같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예배를 드렸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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