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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괜찮아!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5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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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269.괜찮아!


이번 겨울 종하는 산토끼를 여섯 마리나 잡았습니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덕에 예년보다 많이 잡았던 것입니다.
눈이 내리면 종하는 마을 뒷산인 상자골에 올라 올무를 놓았습니다. 철사로 만든 동그란 올무입니다.
토끼 발자국을 찾아 적당한 길목에 올무를 놓으면 토끼가 걸려듭니다. 늘 제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토끼인지라 토끼 길목만 제대로 찾으면 거의 영락없이 토끼가 걸려듭니다.
종하는 잡은 토끼 중 네 마리를 동네 아저씨한테 팔았습니다. 종하가 팔았다기 보다는 동네 아저씨가 종하한테 샀습니다. 서울 친척네 다니러 갈 때 전한다며 마리당 6천원씩에 토끼를 산 것입니다. 4x6=24 이만 사천원, 그만한 액수라면 중학교 3학년 올라가는 종하에겐 적지 않은 용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그러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듬해 집을 떠난 엄마, 나이 많은 할머니 밑에서 종하는 어린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하는 어쩜 토끼 판 돈을 어린 동생들을 위해 남겨 두었는지 모릅니다. 바로 아랫동생인 장난꾸러기 종일이가 올해 벌써 중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무엇이 아쉬운지 잘 알고 있는 종하로서 동생을 위해 뭔가 씀씀이를 정해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방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고 변변치 못한 옷도 그렇고... 아무리 따져봐도 모자랄 계산, 토끼를 잡을 따마다 종하는 혼자만의 계산을 어렵게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종하의 꿈을 밤마다 제가 꿉니다.
밤마다 종하는 상자골에 올라 토끼들과 뛰놉니다. 미안해서 고개 숙인 종하를 토끼들이 잡아당깁니다. 눈 쌓인 숲속을 단숨에 달리기도 하고, 데굴데굴 함께 언덕을 구르기도 합니다.
하얀 입김 하얗게 날리며, 하얀 웃음 하얗게 웃으며 토끼들과 종하는 한데 어울려 밤새도록 뛰놉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아오면 토끼들은 다시 숲속으로 사라집니다. 사라지기 전 토끼들이 다가와 종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입니다.
-괜찮아, 종하야.
우린 괜찮아!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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