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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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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어떤 사회자
조직이야 교회가 시작되면서 곧바로 되었지만,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던 여선교회. 새로운 계기가 될까 싶어 주일 저녁 예배를 헌신예배로 드리기로 했다.
딸이 보내준 옷을 처음 입었다며 사회를 보실 여선교회 회장인 이음천 속장님은 레가 고운 흰색 블라우스를 오후부터 입고 오셔 크지 않냐는 둥, 검게 탄 얼굴엔 아무래도 흰색옷이 어색하지 않냐는 둥, 처음 드리는 헌신예배에 약간의 들뜬 마음을 굳이 감추지 않으셨다. 종이에 크게 써 드린 예배 순서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돌아가셨다.
밤 10시, 예배시간이 되어 사회자인 속장님이 일어 서셨다. 그런데 속장님은 제단 옆에 어색한 모습으로 삐뚜룸히 설 뿐 제단 가운데 서질 않는 것이다.
좁은 사랑방 예배실, 조그만 강대상, 처음엔 몰라서 그러시는 가 싶어 가운데 서시라고 말씀 드렸지만, 회장님은 어찌 나같이 부족한 것이 감히 제단에 설 수 있겠느냐며 굳이 사양을 하신다. 그러는 게 아니라고, 사회자는 원래 가운데 서서 하는 것이라고 다시 말씀 드리자, “어찌 제가 어찌 제가” 하시며 그제서야 주저주저 자리를 옮긴다.
설교하기 위해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속장님이 자리를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단용 방석에 발을 올려놓으시며 감히 밟아서는 안 되는 거룩한 것에 발을 올리는 것처럼 그렇게 두려워 떨며 겨우 방석 한 끝 위 어렵게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죄지은 사람처럼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모습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예배는 시작되었다. 묵도를 하며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것은 불타는 가시덤불 앞에 선 모세의 모습이었다.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어라.
그래, 두려워 떨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는 자는 언제나 어느 때라도 떨리는 영혼으로 서야 한다. 짧은 목회 경륜에 벌써 의무감으로, 습관적으로 떨림 없이 제단에 서는 굳어가는 나에게, 속장님의 어쩔 줄 몰라하는 어색한 몸짓은 분명 신선한 자극이었다. (얘기마을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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