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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솔뫼 이장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6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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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81.솔뫼 이장

 

이웃 마을인 솔뫼에서 이장을 보는 박한선씨가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트럭을 몰고 가다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온 골재채취 트럭과 부딪쳤던 것입니다. 

일톤 트럭이 십육톤 어마어마한 트럭과 부딪쳤으니 끔찍한 일이었죠. 박한선씨가 몰던 트럭은 단번에 납짝 찌그러져 여지없이 폐차지경이었는데, 그래도 천만다행, 흉물스럽게 찌그러진 차에 비하면 박한선씨는 기적이다 여겨질 만큼 다친 것이 가벼웠습니다. 

망가진 차에 비해 다친 것이 경미할 뿐이지 그렇다고 아예 안 다친 것이 아니어서 박한선 이장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법 없이도 살만한 사람의 대표격이다 싶을 만큼 순진무구하고 착한 박한선씨지만, 박한선씨는 사고가 나기 얼마 전부터 화가 날대로 나 있었습니다. 

솔뫼마을 앞으로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데 강변이 어디나 아름답지만 솔뫼마을 앞의 강 풍경은 더없이 평화로운 곳입니다. 비녕 바위쪽으로 부러 마음껏 휜 채 은빛 물결 반짝이며 유유히 흘러오는 강물의 흐름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강을 끼고 펼쳐져 있는 자갈밭이 또한 일품이어서 드넓은 자갈밭과 강물이 서로를 보듬듯 어울리는 곳입니다. 

고기와 고등도 많아 언제 나가도 강가에 사는 재미를 듬뿍 안겨주는 고마운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어느날 낯선 사람 서너명이 찾아와 강가에다 커단 표지판을 세웠는데, 표지판의 내용인 즉 언제부터 골재를 채취할 예정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시장의 허락을 받았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됐으면 그런가보다 구경이나 해야 되는데 ?골재 채취업자 편에서 보자면 -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박한선이장 중심으로 온 마을이 일어났습니다. 

경운기를 몰고 나가 골재채취를 위해 닦아 놓은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아무리 시에서 허락을 했다 하지만 어찌 동네엔 한마디 상의 없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느냐, 전에도 몇 번 골재를 채취해 간적이있는데 때마다 뒷정리를 하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강가에 웅덩이를 만들어 놓아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고인물이 썩도록 했으면서 또다시 밀어붙이기식이라니,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똘똘 뭉친 것이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골재채취업자들이 한방먹은 셈이지요. 그제서야 허둥지둥 마을 대표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부산을 떨더니 얘기가 잘 되었는지 한참 만에야 공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평소엔 그렇게 얌전하고 착하던 이장이 마을을 위한 일엔 어찌 그리 단호하던지, 박한선씨를 새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골재 차와 부딪쳐 사고가 나고만 것이었습니다. 병원을 찾아가 박한선씨를 만났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난 다시한 번 박한선씨에 대해 놀라고 말았습니다. 

 

지난 겨울 박한선씨는 ‘선소리’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선소리’라 하면 상여가 나갈 때 앞에서 소리를 메기는 일입니다.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를 주면 뒤에 상여를 멘 사람들이 선소리에 화답하며 앞으로 나갑니다. 

구성지고 구슬픈 선소리! 

일단 길이로 보아도 엄청난 대사인지라 외우기가 만만치를 않을 뿐더러, 왼다고 다 되는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장례를 앞에서 이끄는 역할을 맡아서 하는 일인데 그 일을 젊은 이장이 나서서 배웠다는 얘기였습니다. 

선소리를 할 수 있는 노인분들이 하나둘 돌아가시고 더 이상은 선소리 줄 사람이 없게 되자 이장이 나서서 선소리를 배웠던 것입니다. 

“선소리를 남한테 맡길수야 있나요. 동네 어른들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우리가 정성껏 모셔야죠.” 

어찌보면 장례란 귀찮고도 궂은일, 그래도 동네 어른들 마지막 길을 정성으로 모시기 위해 ‘선소리’를 배운 이장은 동네에 초상이 날 때마다 도맡아 나서 선소리를 주겠지요. 구성지고 구슬픈 목소리로 고향 땅에 흙 한 줌 보태는 고마운 넋을 위로하고 기리겠지요.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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