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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놀이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840 추천 수 0 2003.03.14 10: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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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3 일과 놀이

 

안방에 새로 놓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요즘 『영성-자비의 힘』(다산글방)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책 읽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하다. '자비'에 대해, 그 동안 우리가 중요하게 사용해온 많은 말들과 그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흔하게 쓰면서 오히려 우리는 진정한 '자비'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뭔가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져 일어나 창 밖을 보니 청소차가 와있었다. 아파트에 있는 쓰레기 함을 비우러 온 차였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제법 큰 쓰레기 함을 이따금씩 쓰레기를 수거하는 자동차가 와서 치워가곤 한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듯, 쓰레기 수거차는 그 큰 쓰레기 함을 대뜸 들어올린 뒤 한 바퀴 뒤집어 가지고는 쓰레기를 자기 몸 속으로 받아들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은데, 자동차 옆에 달린 무엇인가를 조작하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쓰레기 함을 흔들어 혹시 쓰레기 함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쓰레기를 아예 털어 넣는다. (저렇게 가져간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 지는 모르나, 적어도 쓰레기를 치워 가는 모습은 완벽하게 보인다)
그렇게 쓰레기 치우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쓰레기를 치우던 직원이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나타났다. 쭈글쭈글하고 뜯어지기도 한 공의 모양을 보아선 아마도 공도 쓰레기 중의 하나였던가 싶다. 그러나 쓰레기를 치우는 직원은 잠시 동안 그 공을 가지고 신나게 놀았다. 제기를 차듯 발끝으로 공을 차올리기도 했고, 그러다가는 높다랗게 쳐 올리기도 했다.
쓰레기 수거차가 쓰레기를 먹고 있는 동안, 그 잠시 동안, 자신이 하는 일을 아예 잊은 것처럼 공을 차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직원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렇다. 우리 삶 속에 일과 놀이는 저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200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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