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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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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5 나사 돌리기
사택 화장실 문 아래쪽엔 직사각형으로 된 작은 환풍구가 달려있는데, 어느 날 환풍구에 먼지가 잔뜩 껴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빗살처럼 나란히 박혀있는 나무막대 칸마다 뽀얀 먼지가 귀지처럼 앉아있었다.
환풍구에 껴있는 먼지, '상처 입은 치유자'란 말이 있는 것처럼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걸러내는 일을 하다보면 걸러내는 스스로에겐 걸러낼 수 없는 것이 쌓일 수 있는 법, 그 모순과 아픔이 또 다른 사랑일 것이다. 환풍구가 깨끗해야 환풍이 제대로 될 것 아니겠는가 싶어 먼지를 털어 내기로 했다.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제대로 먼지를 털어 내기 위해서는 환풍구를 뜯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개의 나사를 풀어야 했다. 드라이버를 찾아와 나사를 빼내기 시작했는데, 그 중 나사 한 개가 빠지지 않았다. 어중간하게 빠져 나온 뒤부터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드라이버를 돌려도 헛돌기만 했다. 나사머리에 파여 있는 홈이 닳아 드라이버에 제대로 물리지를 않았다.
억지로 잡아 뺄까 하다가 다시 한 번 해보았다. 이번엔 손에 조금 힘을 주어 나사를 돌렸다. 나사를 빼내기 위해 드라이버를 돌리는 것이지만, 거꾸로 나사를 박는 것처럼 안으로 힘을 주며 나사를 돌렸더니 그제야 조금씩 나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은 안으로 주고 있었지만 나사는 밖으로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으로 힘을 주어야 밖으로 빠져 나오는 나사. 때로는 반작용이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다. 닳지 말아야 할 것이 닳고, 헐거워지지 말아야 할 것이 헐거워져 더는 소용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익숙하고 당연한 것을 벗어난 반작용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예상 밖의 접근이나 태도가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길이 될 때가 있다.야단보다도 칭찬이, 매보다도 인정이, 외면보다는 포옹이,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빛이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지나치면 소용이 없는 법,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면 나사는 결국 이상하게 박힐 수밖에 없다. 이쪽으로 돌면서도 저쪽으로 박힐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배려라 하여도 지나치면 어색하게 마음을 닫아걸게 할뿐이다.
화장실의 환풍구, 조심스레 나사를 돌려 빼며 마음을 돌아본다 (200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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