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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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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6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사실 아파트에는 처음 살아본다. 이따금씩 아파트에서 잠을 잔 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장기간 생활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파트에 사니 편한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다.
크게 남 신경 안 쓰고 사는 것이 편하다면 편할 수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불편함이기도 하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삶다운 삶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흙을 밟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 정서적으로는 어색하고 불편하게 여겨진다.
프랑크푸르트의 외곽 지역인 쏘센하임 입구에 있는 아파트, 10층이나 되는 아파트의 4층에 산다. 쏘센하임이라는 지역이 그런 건지 아니면 이곳 아파트 지역이 특별히 그런 건지 참 많은 외국인들이 산다. 동네에 있는 규영이네 학교에 모두 32개 나라 아이들이 다닌다는데, 이곳 아파트에도 그만한 나라 사람들이 사는 것 아닌가 싶다.
저녁때가 되면 밖이 시끌시끌하다. 아파트에 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몰려나와 한 바탕 뛰어 논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에 공을 차는 아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아파트 주변이 아이들로 가득해진다.
아이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저들만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매일 아파트에서 보게 되는 저녁 풍경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고향에서도 늘 그랬다. 저녁이면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 어두워질 때까지 뛰어 놀고는 했다. 저녁마다 동네가 시끌벅적 하고는 했다. 전봇대 중간쯤 달린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 한참 묻힌 뒤에야 아쉬움으로 집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저녁을 먹고도 노는 것에 아쉬움이 남을 땐 "야, 야, 애들 나와라. 여자는 필요 없고 남자 나와라!"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또 불러내고는 했다.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어릴 적 기억을 이곳 쏘센하임 아파트에서 떠올리게 될 줄이야.
얼마 전에 아내가 그랬다. 문득 앰뷸런스 소리를 무심히 듣고있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 깜짝 놀랐단다. 단강 같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 뛰어나와 누구 일인가 살폈을 텐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소리를 듣고 있다니. 그게 지금의 자기라는 사실을 비로소 본 것이다.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이 땅에 더 살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아내의 말에 깊이 공감을 했다.
언어 문제만이 아니다.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끝내 확인하지 못하면 그 땅에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서야 어찌 그 땅을 사랑한다 할 수가 있을 것인가 (200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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