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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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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0 안간힘
아파트로 이사온 이후로부터 아내는 아파트 베란다에 몇 개 화분을 사들였다. 길이가 1 미터쯤 되는 길다란 화분도 있었다.
독일에 와서 그 중 보기 좋은 것이 대부분의 집에서 베란다마다 꽃을 기르는 것이어서 당연히 꽃을 기르려 하다보다 싶었지만 아니었다. 아내는 어디선가 몇 가지 씨를 구하더니 화분에 심었다. 흙도 가게에서 따로 사와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그 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어떤 화분에서는 가느다란 파란 파가 오종종 자라기도 했고, 어떤 화분에서는 그럴 듯이 열무가 자라나기도 했고, 어떤 화분에서는 토마토가, 어떤 화분에서는 고추가 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씨가 달라서일까, 토양이나 기후가 달라서일까, 아무래도 한국에서 대하던 것하고는 자라는 모습이나 매달린 모양이 달랐다.
파도 머리카락보다 조금 굵게 자란 뒤로는 더 이상 굵게 자라지 않았고, 열무도 이파리만 열무 흉내를 낼 뿐 무 같지를 않았다. 고추도 빛깔이 노란 것이 달려 한국에서 보던 것대로 하면 병이 든 것 같아 보였다. 그나마 어색함이 없는 것은 방울토마토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그 것들을 키우는 일에 열심이었다. 때로는 쌀을 씻고 난 뜨물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화분에 주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그렇게 키운 파를 뽑아 양념장으로 무쳐 반찬을 만들기도 했다.
어느 것 하나 버리기가 아까운지 가느다란 실파를 하나하나 아껴서 다듬었다. 어떤 때는 서툴게 자란 열무를 뽑아 된장국을 끓이기도 했고, 어떤 땐 빨갛게 잘 익은 방울토마토 몇 개가 상에 오르기도 했다. 모두가 농사를 짓는 시골에 살 때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던 일을 왜 아내는 독일에 와서 열심을 보이는 것일까. 아내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 어느 순간 그것이 아내의 안간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라도 하여 떠나온 곳에 대한 기억의 끈을 아주 놓지 않으려는 것이며,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릴 것 같은 허전함이나 두려움을 다스리려는 것. 내밀한 감정에 대해 아내에게 묻진 않았지만 멀리 떠나와 몇 가지 씨를 구해 심는 아내를 통해 아주 놓을 수 없는 것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을 붙잡는 안쓰러운 마음을 본다. (200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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