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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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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4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박완서 씨가 쓴 성서묵상집으로 천주교 <서울주보>에다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하고 쓴 '말씀의 이삭'을 모은 책이다. 최인호 씨가 원고를 쓴 적도 있고, 그가 쓴 글 또한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 있으니 <서울주보>로서는 좋은 신도 필자를 둔 셈이다.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는 솔직함과 그윽함이 아울러 느껴지는 좋은 묵상집이다. 원고가 길지 않아 한 꼭지 한 꼭지 읽기가 좋다. 어설프게 복음을 변호하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 어떻게 말씀이 녹아드는지를 말하는 것이 친근감도 있고 설득력도 있다.
차에 넣고 다니며 이따금씩 짬이 날 때 읽곤 하는데, 며칠 전 책을 읽으려고 펼치다가 책 뒤편 여백에 써놓은 글을 대하게 되었다. 지난 여름수련회 때 썼던 글이었다. 잊고 있었던 사진 한 장 우연히 책갈피에서 찾아내듯 지난 여름수련회 때의 일이 그리움으로 떠올랐다.
"전교인수련회 둘째 날 오후, 지하에서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숲으로 나왔다. 마음껏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시라 수련회 오후 시간을 아예 비웠다.
미끈하게 자라 오른 참나무가 하늘을 다 가린 숲은 그늘이 제법 짙다. 숲 속엔 밑동이 족히 한 아름이 넘는 참나무들이 베어진 채로 누워있는 곳이 있어 이곳에서 도착예배도 드렸고, 오늘 아침엔 '산상수훈'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산상수훈을 숲에서 공부하는 맛이 제법이었다. 딱딱한 참나무에 한참을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결리는 불편이 있지만, 숲을 지나는 맑은 바람결에 주님의 음성이 실리는 듯도 하여 더없이 좋은 자리가 되었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 누워있는 참나무 위에 걸터앉아 박완서 씨가 쓴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를 읽는다. 성서와 삶 앞에 솔직하게 열려진 마음과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표현력이 돋보인다. 그의 생각이 나이만큼이나 익어 자연스럽고 그윽하다는 느낌이 나도 모르게 든다. 나이를 따라 생각이 익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이따금씩 책을 덮고 숲을 바라본다. 맑고 고요하다. 깊은 침묵으로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저렇게 고요할 수가 있을까. 문득 숲을 채우고 있는 나무 사이에 한 그루 키 작은 나무되어 무릎을 꿇고 싶은 간절함이 인다. 어느 샌지 내 호흡 또한 고르고 차분해 진다.
하늘을 다 덮은 나뭇잎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퍼진다. 검은 숲 사이로 퍼지는 햇살은 차라리 투명하다. 투명한 햇살은 숲을 채우고 있는 검은색과 녹색을 아름다움으로 잇는다. 숲의 얼굴이 어떤지, 생명의 빛깔이 어떤 것인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유난히 검게 선 두 그루 나무 사이로 유난스레 반짝이는 잎새들이 있다. 어떻게 햇살은 빽빽한 나무 사이를 뚫고, 울창함으로 만들어낸 두꺼운 나뭇잎의 층을 지나 저만의 세상으로 숨어들어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하필 저 한 곳에 모여든 것일까.
골고루 내리는 은총을 본다. 이 순간 햇살은 숲의 하많은 나무와 하많은 잎새를 두고 바로 저 나뭇잎에 자기 손길 필요하여 저렇게 따사로운 손길로 찾아와 머무는 것이리라. 하루의 시간을 보내며 누구하나 예외 없이 골고루 숲을 어루만질 자애로운 손길.
부디 우리의 삶이 숲을 닮기를. 조용하여 스스로 넉넉하기를. 골고루 내리는 은총으로 언제 어디 누구와 어울려 서도 평화로 설 수 있기를.
나무 사이로 난 희미한 오솔길, 내 마음으로 나는 오솔길 또한 숲의 오솔길과 다르지 않아 끝을 굳이 헤아리지 않고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 있기를." (2002.11.18)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박완서 씨가 쓴 성서묵상집으로 천주교 <서울주보>에다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하고 쓴 '말씀의 이삭'을 모은 책이다. 최인호 씨가 원고를 쓴 적도 있고, 그가 쓴 글 또한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 있으니 <서울주보>로서는 좋은 신도 필자를 둔 셈이다.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는 솔직함과 그윽함이 아울러 느껴지는 좋은 묵상집이다. 원고가 길지 않아 한 꼭지 한 꼭지 읽기가 좋다. 어설프게 복음을 변호하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 어떻게 말씀이 녹아드는지를 말하는 것이 친근감도 있고 설득력도 있다.
차에 넣고 다니며 이따금씩 짬이 날 때 읽곤 하는데, 며칠 전 책을 읽으려고 펼치다가 책 뒤편 여백에 써놓은 글을 대하게 되었다. 지난 여름수련회 때 썼던 글이었다. 잊고 있었던 사진 한 장 우연히 책갈피에서 찾아내듯 지난 여름수련회 때의 일이 그리움으로 떠올랐다.
"전교인수련회 둘째 날 오후, 지하에서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숲으로 나왔다. 마음껏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시라 수련회 오후 시간을 아예 비웠다.
미끈하게 자라 오른 참나무가 하늘을 다 가린 숲은 그늘이 제법 짙다. 숲 속엔 밑동이 족히 한 아름이 넘는 참나무들이 베어진 채로 누워있는 곳이 있어 이곳에서 도착예배도 드렸고, 오늘 아침엔 '산상수훈'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산상수훈을 숲에서 공부하는 맛이 제법이었다. 딱딱한 참나무에 한참을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결리는 불편이 있지만, 숲을 지나는 맑은 바람결에 주님의 음성이 실리는 듯도 하여 더없이 좋은 자리가 되었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 누워있는 참나무 위에 걸터앉아 박완서 씨가 쓴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를 읽는다. 성서와 삶 앞에 솔직하게 열려진 마음과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표현력이 돋보인다. 그의 생각이 나이만큼이나 익어 자연스럽고 그윽하다는 느낌이 나도 모르게 든다. 나이를 따라 생각이 익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이따금씩 책을 덮고 숲을 바라본다. 맑고 고요하다. 깊은 침묵으로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저렇게 고요할 수가 있을까. 문득 숲을 채우고 있는 나무 사이에 한 그루 키 작은 나무되어 무릎을 꿇고 싶은 간절함이 인다. 어느 샌지 내 호흡 또한 고르고 차분해 진다.
하늘을 다 덮은 나뭇잎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퍼진다. 검은 숲 사이로 퍼지는 햇살은 차라리 투명하다. 투명한 햇살은 숲을 채우고 있는 검은색과 녹색을 아름다움으로 잇는다. 숲의 얼굴이 어떤지, 생명의 빛깔이 어떤 것인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유난히 검게 선 두 그루 나무 사이로 유난스레 반짝이는 잎새들이 있다. 어떻게 햇살은 빽빽한 나무 사이를 뚫고, 울창함으로 만들어낸 두꺼운 나뭇잎의 층을 지나 저만의 세상으로 숨어들어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하필 저 한 곳에 모여든 것일까.
골고루 내리는 은총을 본다. 이 순간 햇살은 숲의 하많은 나무와 하많은 잎새를 두고 바로 저 나뭇잎에 자기 손길 필요하여 저렇게 따사로운 손길로 찾아와 머무는 것이리라. 하루의 시간을 보내며 누구하나 예외 없이 골고루 숲을 어루만질 자애로운 손길.
부디 우리의 삶이 숲을 닮기를. 조용하여 스스로 넉넉하기를. 골고루 내리는 은총으로 언제 어디 누구와 어울려 서도 평화로 설 수 있기를.
나무 사이로 난 희미한 오솔길, 내 마음으로 나는 오솔길 또한 숲의 오솔길과 다르지 않아 끝을 굳이 헤아리지 않고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 있기를." (200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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