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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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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6 받지 못한 것을 줄 수 없다
"어릴 때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을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경우는 드물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나 친구로부터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가 커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어릴 적 다른 사람들로부터 용납 받았던 경험이 있는 아이가 커서도 남을 용납할 수 있는 것이고, 어릴 적 사랑하는 이로부터 용서받았던 경험이 있는 아이가 커서도 남을 용서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뒤집어 생각하면 사랑 받았던 경험이 없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남을 진정으로 사랑하기가 어렵고,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여졌던 경험이 없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누군가를 따뜻하게 인정해 주기가 어렵고, 용서받아 본 경험이 없는 아이가 커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하기가 어렵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런 말을 무슨 공식처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삶은 언제라도 공식이 될 수 없는 것이고, 공식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늘 예외가 있는 법이고 바로 그 예외가 희망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볼 때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에 수긍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내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들은 대개가 어린 시절 내가 마음껏 누렸던 것들입니다. 반면에 내가 힘들어하거나 어색해하는 것들은 어릴 적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누리지 못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받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실은 어릴 적의 경험만이 아니어서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받지 못한 것을 베푼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 삶을 가만 둘러보면 이내 확인하게 됩니다.
독일에서 운전을 하며 느끼게 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마주 오던 차가 도로에 멈춰 서서 헤드라이트를 깜박 깜박거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특히 교차로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렇게 헤드라이트를 깜박거리는 것을 경고나 위협의 의미로 알고 있던 내게 독일에서의 경험은 낯설고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독일에서 마주 오는 차에게 불빛을 반짝이는 것은 내가 양보할 터이니 당신부터 가십시오, 하는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선뜻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알고 나니 얼마나 편하던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그런 배려를 받게되니 나도 양보할 경우가 생기면 기꺼이 양보를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색하거나 억울하다는 생각 없이 양보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내가 양보를 받았던 즐거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좋은 것을 베풀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내게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베풀지 않으면 결국은 아무도 베푸는 이가 없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2002.12.2)
"어릴 때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을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경우는 드물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나 친구로부터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가 커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어릴 적 다른 사람들로부터 용납 받았던 경험이 있는 아이가 커서도 남을 용납할 수 있는 것이고, 어릴 적 사랑하는 이로부터 용서받았던 경험이 있는 아이가 커서도 남을 용서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뒤집어 생각하면 사랑 받았던 경험이 없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남을 진정으로 사랑하기가 어렵고,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여졌던 경험이 없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누군가를 따뜻하게 인정해 주기가 어렵고, 용서받아 본 경험이 없는 아이가 커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하기가 어렵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런 말을 무슨 공식처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삶은 언제라도 공식이 될 수 없는 것이고, 공식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늘 예외가 있는 법이고 바로 그 예외가 희망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볼 때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에 수긍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내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들은 대개가 어린 시절 내가 마음껏 누렸던 것들입니다. 반면에 내가 힘들어하거나 어색해하는 것들은 어릴 적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누리지 못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받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실은 어릴 적의 경험만이 아니어서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받지 못한 것을 베푼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 삶을 가만 둘러보면 이내 확인하게 됩니다.
독일에서 운전을 하며 느끼게 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마주 오던 차가 도로에 멈춰 서서 헤드라이트를 깜박 깜박거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특히 교차로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렇게 헤드라이트를 깜박거리는 것을 경고나 위협의 의미로 알고 있던 내게 독일에서의 경험은 낯설고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독일에서 마주 오는 차에게 불빛을 반짝이는 것은 내가 양보할 터이니 당신부터 가십시오, 하는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선뜻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알고 나니 얼마나 편하던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그런 배려를 받게되니 나도 양보할 경우가 생기면 기꺼이 양보를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색하거나 억울하다는 생각 없이 양보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내가 양보를 받았던 즐거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좋은 것을 베풀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내게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베풀지 않으면 결국은 아무도 베푸는 이가 없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20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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