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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서어나무만 힘들었으랴

이현주 이현주............... 조회 수 970 추천 수 0 2003.04.23 12:28:10
.........
266 어찌 서어나무만 힘들었으랴

굵은 뱀이 기어올라가는 듯한
상처를 몸에 두르고
어제 그 자리에
오늘도 서어나무 혼자 서 있네.

지금보다 어렸을 때였겠지.
등나무 씨앗 하나 날아와
발치에 뿌리내리고는
기어올라왔겠지, 같이 살자고.
그래서 둘은 운명처럼 만나
함께 꽃도 피우면서
더불어 살았겠지.
그러다가 어느날 서어나무가
답답해지기 시작했겠지.
몸통을 죄어오는 등나무 줄기가
세월 따라 아픔으로
바뀌었겠지.
그래도 참는데까지 참아 보자고
견디다 보니 서어나무 몸통에
등나무 줄기가 파고 들었겠지.

그러나 어찌 서어나무만
힘들었으랴.
등나무도 무척이나 괴로웠겠지.
이렇게 서어나무가 굵어질 줄 알았더면
좀 더 느슨하게 사랑할 것을.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쩔 것인가?
서어나무가 숨통이 막히든지
등나무가 끊어져 동강나든지
길은 두 길 밖에 없고
두 길을 나란히 갈 수 도 없고
그리하여 어느 슬픈 날
등나무 줄기가 그만 끊어졌겠지.
서어나무 몸통에 상처만 남기고
세월 따라 티끌 되어
날아갔겠지.

저기 홀로 서 있는 서어나무
서어나무 가지에
작은 새 한 마리 아까부터
부리를 닦고 있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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