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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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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9 우산 하나로 잃은 자리
조선시대에 가장 감당하기 힘든 관직은 아무래도 호조 판서였다고 한다. 나라 살림인 재정을 맡는 호조 판서는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하고 약속을 잘 지켜야 했기 때문에 대개는 1년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한다. 그런데 10년이나 호조 판서를 한 이가 있으니, 영조 때의 정홍순이란 사람이었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임금님의 행차가 있던 날, 정홍순도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성대한 행차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마침 정홍순은 우산을 두 개 가지고 있었고, 우산이 없어 당황하는 한 젊은 선비에게 우산 하나를 빌려주고 동행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선비의 마을 입구에 도착했는데도 비가 그치지 않자, 선비는 내일 우산을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우산을 빌려갔다.
그런데 우산을 빌려간 선비는 사흘이 되도록 우산을 가지고 오지를 않았다. 정홍순은 수소문하여 젊은 선비의 집을 찾아갔다. 선비는 마침 사돈이 우중에 찾아왔다가 우산을 쓰고 갔으니 사흘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또 사흘이 지났지만 선비는 우산을 되돌려주지를 않았다. 정홍순은 다시 선비를 찾아갔다. 그러자 선비는 낡은 우산 하나 때문에 이렇게 극성을 부리냐며 오히려 화를 내었다. 그러면서 그 낡은 우산 대신 우산 장수가 지나가면 새 우산을 하나 사주겠다고 하였다.
그 때 정홍순이 대답하였다.
"내가 돌려 받고 싶은 것은 우산이 아니라 신의요."
정홍순은 100리 길인 선비의 사돈집을 찾아가 우산을 찾아 가지고 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정홍순이 호조 판서로 당상에 앉았는데 새로 부임된 호조 좌랑이 인사를 하러 들어왔다. 어디서 많은 본 인상이어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20년 전 우산을 돌려주지 않았던 바로 그 선비였다. 정홍순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호조 좌랑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찮은 우산 하나를 두고도 신의를 못 지키는 자에게 어떻게 나라의 큰 주머니를 맡기겠는가?"
낡은 우산 하나는 하찮아 보이는 것이었고 하찮아 보였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결국 그 일 때문에 선비는 자기 자리를 잃고 말았다. 씨앗 속에 열매가 있고, 씨앗 속에 과수원이 있다. 작은 약속부터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 큰 일을 감당하는 첫 걸음임을 그 옛날 우산 하나가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2003.8.7)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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