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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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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어릴 적 대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터질 것 같았던 흥분과 긴장, 밤잠을 설치던 설렘, 온 산과 들을 쏘다니며 자연을 스승과 친구로 삼았던 시간들, 친구와의 갈등과 애틋한 우정, 생애 처음으로 대하는 사물과 이름에 대한 경외심 등 우리의 어릴 적 시간은 그 시간만이 가질 수 있는 빛깔과 향기로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 시간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일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묻기는 묻었는데 어디다 묻었는지를 잃어버린 보물상자처럼,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금(砂金)을 채취하듯 지난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면 그래도 기억 속에서 아주 사라지지 않은 순간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보물보따리를 묻을 때 미처 챙기지 못한 기억들이 따로 있어 나 여기 있다고 저마다 손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지요,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용케 남아있는 순간들은 사소한 순간일 때가 많습니다.
크고 거창한 일보다는 아주 작고 사소했던 일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을 때가 많습니다. 작고 사소하기에 보물보따리를 묻을 때 따로 챙기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어릴 적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 중의 하나는 이발소에 관한 것입니다. 어릴 적 이발소는 그리 유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두어 시간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랬고, 이따금씩 머리를 깎으며 '바리깡'이라 불렀던 기계에 머리를 쥐어뜯기는 일도 고역이라면 아주 고역이었으니까요. 기차 역 앞에 있던 어릴 적 이발소는 지금 생각해도 촌스러움과 정겨움으로 고스란히 되살아옵니다. 키가 작은 어린 손님들을 위해 빨래판처럼 생긴 판자를 의자 위에 올려놓던 모습도 생각나고, 그 위에 앉아있는 나 자신이 어색하지 않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 적 이발사를 기억하는 것은 머리를 감기는 일과 관련해서 입니다. 머리를 깎은 뒤에는 꼭 머릴 감겨주었는데, 난로 위 양동이에서 끓고 있는 물에 찬물을 적당히 섞어 머리를 감기고는 했습니다. 샴푸가 없었던 그 시절 머리는 비누로 감을 수밖에 없었는데, 머리를 감기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자면 흘러내린 비누거품이 두 눈으로 들어갈 것 같고, 그럴수록 눈을 꼭 감지만 그래도 두 눈은 쓰라리곤 했습니다.
머리를 다 감긴 후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줄 때, 그 때 이발사는 얼른 제 두 눈부터 닦아주곤 했습니다. 머리를 감는 동안 제일 불편한 곳이 두 눈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서 두 눈부터 닦아주었던 것인지, 어릴 적엔 그저 고마웠던 그 순간이 세월이 이만큼 지나가도록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겐 두고두고 고맙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릴 적 두 눈부터 닦아주던 이발사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란 매순간 그런 것이었습니다. (2003.12.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그러나 어릴 적 시간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일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묻기는 묻었는데 어디다 묻었는지를 잃어버린 보물상자처럼,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금(砂金)을 채취하듯 지난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면 그래도 기억 속에서 아주 사라지지 않은 순간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보물보따리를 묻을 때 미처 챙기지 못한 기억들이 따로 있어 나 여기 있다고 저마다 손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지요,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용케 남아있는 순간들은 사소한 순간일 때가 많습니다.
크고 거창한 일보다는 아주 작고 사소했던 일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을 때가 많습니다. 작고 사소하기에 보물보따리를 묻을 때 따로 챙기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어릴 적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 중의 하나는 이발소에 관한 것입니다. 어릴 적 이발소는 그리 유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두어 시간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랬고, 이따금씩 머리를 깎으며 '바리깡'이라 불렀던 기계에 머리를 쥐어뜯기는 일도 고역이라면 아주 고역이었으니까요. 기차 역 앞에 있던 어릴 적 이발소는 지금 생각해도 촌스러움과 정겨움으로 고스란히 되살아옵니다. 키가 작은 어린 손님들을 위해 빨래판처럼 생긴 판자를 의자 위에 올려놓던 모습도 생각나고, 그 위에 앉아있는 나 자신이 어색하지 않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 적 이발사를 기억하는 것은 머리를 감기는 일과 관련해서 입니다. 머리를 깎은 뒤에는 꼭 머릴 감겨주었는데, 난로 위 양동이에서 끓고 있는 물에 찬물을 적당히 섞어 머리를 감기고는 했습니다. 샴푸가 없었던 그 시절 머리는 비누로 감을 수밖에 없었는데, 머리를 감기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자면 흘러내린 비누거품이 두 눈으로 들어갈 것 같고, 그럴수록 눈을 꼭 감지만 그래도 두 눈은 쓰라리곤 했습니다.
머리를 다 감긴 후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줄 때, 그 때 이발사는 얼른 제 두 눈부터 닦아주곤 했습니다. 머리를 감는 동안 제일 불편한 곳이 두 눈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서 두 눈부터 닦아주었던 것인지, 어릴 적엔 그저 고마웠던 그 순간이 세월이 이만큼 지나가도록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겐 두고두고 고맙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릴 적 두 눈부터 닦아주던 이발사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란 매순간 그런 것이었습니다. (2003.12.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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