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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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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대개가 우울하고 답답한 소식들입니다. 마치 비 오고 흐린 날씨가 이어지는 것처럼 궂은 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그칠 줄을 모르는 테러와 전쟁의 소식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고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축복하는 대신 일방적으로 불신과 증오를 키워가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인류에겐 핵문제보다도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지구라는 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대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벼랑으로 내모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치며 경제 등 국내의 여러 가지 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기대가 어이없이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우리가 자꾸 절망과 체념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됩니다. 모두의 마음이 거칠어지고 조급해지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끼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햇빛에 뽀송뽀송 잘 말린 빨래처럼 밝고 가벼운 마음보다는, 계속되는 흐린 날씨에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눅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희망과 밝음에 익숙해진다는 것과 절망과 체념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아주 다른 일입니다. 지금 현실의 어려움과는 상관없이 삶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정해지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겪고 있는 문제보다는 이 문제를 통해 우리 삶의 방향이 어디로 정해질지 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갑니다.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 속에서 마틴 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세상은 '나와 너'라는 근원어를 통해 존재합니다. '너'없는 '나'는 있을 수가 없고, '나'없는 '너'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와 너'를 가능케 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나와 너 사이의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너'는 결코 '나'의 수단이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란 한 사람의 '너'에 대한 한 사람의 '나'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불행의 이유는 '나-너'의 관계가 '나-그것'의 관계로 전락한 데에 있습니다. '나-그것'의 관계는 '너'를 수단과 도구로 생각할 뿐입니다. '너'를 인격체로 대하는 대신 내 이익과 욕망을 채우려는 물건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온갖 뒤틀린 문제는 '나-너'의 관계가 '나―그것'이라는 몰인격적이고 파괴적인 관계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병들대로 병든 '나-그것'의 관계를 '나―너'의 인격적인 관계로 회복시키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희망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나-너'의 관계를 지켜가고 있는지, 세상을 탓하며 어느새 '나-그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를 말입니다. 온갖 관계를 '나-너'로 회복하는 데에 우리의 희망이 달려있음을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2004.8.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정치며 경제 등 국내의 여러 가지 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기대가 어이없이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우리가 자꾸 절망과 체념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됩니다. 모두의 마음이 거칠어지고 조급해지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끼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햇빛에 뽀송뽀송 잘 말린 빨래처럼 밝고 가벼운 마음보다는, 계속되는 흐린 날씨에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눅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희망과 밝음에 익숙해진다는 것과 절망과 체념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아주 다른 일입니다. 지금 현실의 어려움과는 상관없이 삶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정해지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겪고 있는 문제보다는 이 문제를 통해 우리 삶의 방향이 어디로 정해질지 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갑니다.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 속에서 마틴 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세상은 '나와 너'라는 근원어를 통해 존재합니다. '너'없는 '나'는 있을 수가 없고, '나'없는 '너'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와 너'를 가능케 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나와 너 사이의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너'는 결코 '나'의 수단이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란 한 사람의 '너'에 대한 한 사람의 '나'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불행의 이유는 '나-너'의 관계가 '나-그것'의 관계로 전락한 데에 있습니다. '나-그것'의 관계는 '너'를 수단과 도구로 생각할 뿐입니다. '너'를 인격체로 대하는 대신 내 이익과 욕망을 채우려는 물건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온갖 뒤틀린 문제는 '나-너'의 관계가 '나―그것'이라는 몰인격적이고 파괴적인 관계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병들대로 병든 '나-그것'의 관계를 '나―너'의 인격적인 관계로 회복시키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희망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나-너'의 관계를 지켜가고 있는지, 세상을 탓하며 어느새 '나-그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를 말입니다. 온갖 관계를 '나-너'로 회복하는 데에 우리의 희망이 달려있음을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2004.8.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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