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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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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촛불을 밝힙니다. 그러기를 좋아합니다. 욕심처럼 촛대 서너 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불을 밝히기도 합니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 찬바람이 불 때 촛불을 밝히면 불가에 앉은 듯 마음이 따뜻해지곤 합니다.
한 가운데 심지를 박고 녹은 만큼 타오르는 촛불, 더는 욕심을 부르지 않는 미덕을 촛불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정직함에 촛불은 전깃불이 갖지 못한 그윽한 깊이를 지닙니다. 촛불 앞에 앉으면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은 마음속 어수선함을 지워내며 마음의 방을 이내 정갈하게 합니다.
조용함과 차분함 속에서 가만 고개를 드는 생각들도 있습니다. 빛의 체에 걸러진 듯 맑은 생각들입니다. 기품 있게 흔들리는 불빛, 살아있는 것 곁에 있으면 덩달아 생각이 살아있는 듯도 싶고, 나도 모를 그리움에 마음 끝이 시려오기도 합니다.
타오르던 초가 마지막 사그라지는 순간은 허망합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 발을 헛디딘 듯 한 순간 까맣게 고꾸라집니다. 그러고 보면 타고 있던 것은 촛농만이 아니어서 정수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말없이 잊혀진 것 따로 있었음을 마지막 사그라지는 심지는 말없이 일러줍니다. 빛을 꿈꾸는 자는 그 허망한 스러짐을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때마다 마음에 새깁니다.
며칠 전 이사를 하다가 연장통 속에 들어있는 초 하나를 보았습니다. 키가 작은 노란색 초였는데, 어떻게 하다 연장통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인지 초 겉면이 까맣게 때가 묻어 있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초라한 초였습니다.
이사를 하다보면 버릴 것이 참 많습니다. 버리는데 익숙해진 손길로 때묻은 초도 버리려 하다가 일부러 따로 챙겨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지나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 후 짐 정리를 마치고 오랜만에 책상에 앉게 되었을 때 마침 비가 내려서인지 촛불 생각이 났고, 일부러 까맣게 때가 묻은 초를 서랍에서 꺼내 불을 밝혔습니다.
여러 달 세수를 하지 않은 아이처럼 까맣게 때가 묻은 초였지만 불을 붙이자 초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겉모습이 더러웠을 뿐 여느 초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조금도 구김살이 없는 밝고 맑은 불빛이었습니다. 때묻은 겉모습 속에서 맑게 타오르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여겨졌습니다.
그 촛불을 바라보며 이 글을 씁니다. 때로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도 때가 묻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그래서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할 때가 있고, 그러면 우리는 졸지에 초라한 존재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변함 없이 타오를 수 있다고, 오늘은 저 때묻은 초가 더욱 맑게 타오르며 말없이 일러 주는 것만 같습니다. 2004.10.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한 가운데 심지를 박고 녹은 만큼 타오르는 촛불, 더는 욕심을 부르지 않는 미덕을 촛불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정직함에 촛불은 전깃불이 갖지 못한 그윽한 깊이를 지닙니다. 촛불 앞에 앉으면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은 마음속 어수선함을 지워내며 마음의 방을 이내 정갈하게 합니다.
조용함과 차분함 속에서 가만 고개를 드는 생각들도 있습니다. 빛의 체에 걸러진 듯 맑은 생각들입니다. 기품 있게 흔들리는 불빛, 살아있는 것 곁에 있으면 덩달아 생각이 살아있는 듯도 싶고, 나도 모를 그리움에 마음 끝이 시려오기도 합니다.
타오르던 초가 마지막 사그라지는 순간은 허망합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 발을 헛디딘 듯 한 순간 까맣게 고꾸라집니다. 그러고 보면 타고 있던 것은 촛농만이 아니어서 정수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말없이 잊혀진 것 따로 있었음을 마지막 사그라지는 심지는 말없이 일러줍니다. 빛을 꿈꾸는 자는 그 허망한 스러짐을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때마다 마음에 새깁니다.
며칠 전 이사를 하다가 연장통 속에 들어있는 초 하나를 보았습니다. 키가 작은 노란색 초였는데, 어떻게 하다 연장통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인지 초 겉면이 까맣게 때가 묻어 있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초라한 초였습니다.
이사를 하다보면 버릴 것이 참 많습니다. 버리는데 익숙해진 손길로 때묻은 초도 버리려 하다가 일부러 따로 챙겨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지나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 후 짐 정리를 마치고 오랜만에 책상에 앉게 되었을 때 마침 비가 내려서인지 촛불 생각이 났고, 일부러 까맣게 때가 묻은 초를 서랍에서 꺼내 불을 밝혔습니다.
여러 달 세수를 하지 않은 아이처럼 까맣게 때가 묻은 초였지만 불을 붙이자 초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겉모습이 더러웠을 뿐 여느 초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조금도 구김살이 없는 밝고 맑은 불빛이었습니다. 때묻은 겉모습 속에서 맑게 타오르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여겨졌습니다.
그 촛불을 바라보며 이 글을 씁니다. 때로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도 때가 묻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그래서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할 때가 있고, 그러면 우리는 졸지에 초라한 존재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변함 없이 타오를 수 있다고, 오늘은 저 때묻은 초가 더욱 맑게 타오르며 말없이 일러 주는 것만 같습니다. 2004.10.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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