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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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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484- <청중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설교자/생명의말씀사>중에서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
세례요한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자로 만들어 준 것은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곳입니다. 성경은 그곳이 "빈 들"이었다고 가르쳐 줍니다.(눅3:2)
선지자 세례요한에게 말씀이 임한 곳이 빈 들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왜 제사가 드려지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었을까요? 왜 유능한 랍비들이 열심히 율법을 강론하던 회당이나 따뜻한 부모의 사랑이 있는 가정이 아니었을까요? 왜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는 예루살렘의 거리나 율법을 배우던 공부방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실로 진리의 사람이 채 되기도 전에 단지 인간적인 의욕에 불타 목회의 현장으로 달음질치는 이 시대 사역자들의 뒷덜미를 붙잡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교자에게는 하나님과의 독대(獨對)를 위한 거룩한 외로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상의 온갖 속된 것에서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홀로 진리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그러한 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빈 들"은 이러한 일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
세례요한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자로 만들어 준 것은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곳입니다. 성경은 그곳이 "빈 들"이었다고 가르쳐 줍니다.(눅3:2)
선지자 세례요한에게 말씀이 임한 곳이 빈 들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왜 제사가 드려지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었을까요? 왜 유능한 랍비들이 열심히 율법을 강론하던 회당이나 따뜻한 부모의 사랑이 있는 가정이 아니었을까요? 왜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는 예루살렘의 거리나 율법을 배우던 공부방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실로 진리의 사람이 채 되기도 전에 단지 인간적인 의욕에 불타 목회의 현장으로 달음질치는 이 시대 사역자들의 뒷덜미를 붙잡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교자에게는 하나님과의 독대(獨對)를 위한 거룩한 외로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상의 온갖 속된 것에서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홀로 진리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그러한 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빈 들"은 이러한 일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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