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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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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바지에 몸에 꽉 끼는 상의, 독특한 걸음새, 머리에는 작은 중절모, 손에는 우산대 지팡이, 검정색 테이프를 붙인 것 같은 콧수염과 입이 귀에 닿도록 웃는 웃음, 이 정도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요. 많은 사람을 웃기고 울렸던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입니다.
어느 날 찰리 채플린이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때마침 그 마을에서는 찰리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를 느낀 찰리 채플린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그 대회에 참가를 하였습니다. 진짜 찰리 채플린이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에 참여를 하였으니 결과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심사발표를 보니 찰리 채플린은 3등이었습니다. 진짜 찰리 채플린보다 더 채플린답게 연기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니 채플린도 웃을 일이었겠죠. 그들의 연기가 얼마나 그럴 듯 했으면 진짜 채플린보다 등수가 높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사람들의 평가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독일 노래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꾀꼬리와 뻐꾸기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꾀꼬리와 뻐꾸기가 누가 더 노래를 아름답게 하는지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심사를 볼 동물이 당나귀 밖에는 없었습니다.
먼저 꾀꼬리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꾀꼬리답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더없이 맑고 고운 노랫소리가 숲 속으로 퍼져가는 동안 심사 위원인 당나귀는 길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멍청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거렸습니다.
다음으로 뻐꾸기가 나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뻐꾸기는 단지 두 음절의 짤막한 노래를 반복해서 부를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멍청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당나귀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뻐꾸기의 단순한 노래는 당나귀도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뻐꾹 뻐꾹 하며 반복하여 내는 노래는 자신이 내는 히힝 히힝 하는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얼마든지 이해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당나귀는 꾀꼬리보다 뻐꾸기가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고 판정을 내렸지요.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어쩌면 우리들은 아는 만큼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알기 때문에 아는 만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만큼 말하는 것이지요.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만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판단을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판단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자신의 판단만이 정확하다고 확신을 하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지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무례를 범하기도 하고요. 다른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이 시대에 채플린이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에서 3등을 했다는 이야기를 겸손함으로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2004.12.18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어느 날 찰리 채플린이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때마침 그 마을에서는 찰리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를 느낀 찰리 채플린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그 대회에 참가를 하였습니다. 진짜 찰리 채플린이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에 참여를 하였으니 결과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심사발표를 보니 찰리 채플린은 3등이었습니다. 진짜 찰리 채플린보다 더 채플린답게 연기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니 채플린도 웃을 일이었겠죠. 그들의 연기가 얼마나 그럴 듯 했으면 진짜 채플린보다 등수가 높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사람들의 평가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독일 노래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꾀꼬리와 뻐꾸기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꾀꼬리와 뻐꾸기가 누가 더 노래를 아름답게 하는지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심사를 볼 동물이 당나귀 밖에는 없었습니다.
먼저 꾀꼬리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꾀꼬리답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더없이 맑고 고운 노랫소리가 숲 속으로 퍼져가는 동안 심사 위원인 당나귀는 길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멍청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거렸습니다.
다음으로 뻐꾸기가 나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뻐꾸기는 단지 두 음절의 짤막한 노래를 반복해서 부를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멍청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당나귀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뻐꾸기의 단순한 노래는 당나귀도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뻐꾹 뻐꾹 하며 반복하여 내는 노래는 자신이 내는 히힝 히힝 하는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얼마든지 이해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당나귀는 꾀꼬리보다 뻐꾸기가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고 판정을 내렸지요.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어쩌면 우리들은 아는 만큼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알기 때문에 아는 만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만큼 말하는 것이지요.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만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판단을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판단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자신의 판단만이 정확하다고 확신을 하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지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무례를 범하기도 하고요. 다른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이 시대에 채플린이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에서 3등을 했다는 이야기를 겸손함으로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2004.12.18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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