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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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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밤에 모이는 성서연구시간은 소중하게 생각되는 시간이다. 일방적으로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말씀을 공부하게 되니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고 평소의 생각을 나누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시간이라 하겠다. 바빠서일지, 형편 때문일지 많은 교우들이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때마다 아쉽게 여겨지지만.
이번 주 수요일부터는 공부하는 방식을 약간 바꿨다. 그동안은 본문을 돌아가며 묵상을 하고 그 내용을 발표한 뒤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묵상 대신 본문과 관련된 질문을 몇 가지씩 준비하기로 했다. 아무 자료 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그 자료를 준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교우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부담을 덜기로 하였다. (욕심 같아서는 말씀을 공부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교우들이 욕심을 가지고 따라와 주었으면 싶다. 몸과 마음에 군살이 배길 정도로!)
공부하는 방식을 바꾼 뒤 첫 번째 맞이한 시간, 김상목 성도가 순서를 맡았다. 본문은 마가복음 12:28-34, 최고의 계명에 관한 말씀이었다. 김상목 성도는 본문을 통해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의 나라' 하면 흔히 미래나 사후세계를 생각하는데 말씀을 읽고 보니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질문과, 예수님의 말씀은 가장 쉬운 것 같은데 사실은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는 고백이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자본주의 체제 아래 경쟁사회 속에서 지키기란 너무도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솔직한 고백을 덧붙였다. 좋고 지당한 말씀이기는 하나 지키기 어려운 말씀들이 성서 속에는 너무도 많다. 성서는 우리에게 완벽주의자가 되라는 것일까, 위선자를 각오하라는 것일까. 그런 고민은 신앙인들이 말씀 앞에서 느끼게 되는 곤혹스러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한 마디를 했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완벽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씀이 갖는 기능 중의 하나는 너 자신의 한계를 잊지 말라는 것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 내가 그 사람보다 낫다는 이유로 우쭐하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 하여도 말씀 앞에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통해 결국 내가 죄인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말씀이 갖는 기능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듣고 가만 생각하던 김상목 성도는 "그렇겠네요!" 하며 공감을 했다. 그리고는 지금 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고,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교만함에 빠지지 않도록 때마다 우리의 한계를 일러주는 말씀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할 이유는 그렇게 여러 가지인 셈이다. 2005.1.22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이번 주 수요일부터는 공부하는 방식을 약간 바꿨다. 그동안은 본문을 돌아가며 묵상을 하고 그 내용을 발표한 뒤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묵상 대신 본문과 관련된 질문을 몇 가지씩 준비하기로 했다. 아무 자료 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그 자료를 준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교우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부담을 덜기로 하였다. (욕심 같아서는 말씀을 공부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교우들이 욕심을 가지고 따라와 주었으면 싶다. 몸과 마음에 군살이 배길 정도로!)
공부하는 방식을 바꾼 뒤 첫 번째 맞이한 시간, 김상목 성도가 순서를 맡았다. 본문은 마가복음 12:28-34, 최고의 계명에 관한 말씀이었다. 김상목 성도는 본문을 통해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의 나라' 하면 흔히 미래나 사후세계를 생각하는데 말씀을 읽고 보니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질문과, 예수님의 말씀은 가장 쉬운 것 같은데 사실은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는 고백이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자본주의 체제 아래 경쟁사회 속에서 지키기란 너무도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솔직한 고백을 덧붙였다. 좋고 지당한 말씀이기는 하나 지키기 어려운 말씀들이 성서 속에는 너무도 많다. 성서는 우리에게 완벽주의자가 되라는 것일까, 위선자를 각오하라는 것일까. 그런 고민은 신앙인들이 말씀 앞에서 느끼게 되는 곤혹스러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한 마디를 했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완벽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씀이 갖는 기능 중의 하나는 너 자신의 한계를 잊지 말라는 것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 내가 그 사람보다 낫다는 이유로 우쭐하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 하여도 말씀 앞에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통해 결국 내가 죄인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말씀이 갖는 기능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듣고 가만 생각하던 김상목 성도는 "그렇겠네요!" 하며 공감을 했다. 그리고는 지금 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고,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교만함에 빠지지 않도록 때마다 우리의 한계를 일러주는 말씀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할 이유는 그렇게 여러 가지인 셈이다. 2005.1.22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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