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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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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 중에 유난히 마음에 남아있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닌데도 마음에 남아 문득 문득 떠오르는 일들이 있습니다. 빛 바랜 흑백사진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아주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있습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의 일이 제겐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일지 5학년일지, 여름방학 때의 일로 기억됩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는데, 저수지 근처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집도 서너 채 있었습니다.
뜨거운 한낮, 저수지 옆 솔밭을 따라 친구네 집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저만치 앞에서 한 남자어른이 걸어오는데, 그 분은 낮술에 취했는지 걸음이 비틀거렸습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랍고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어른의 손에 낫 한 자루가 들려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으로도 낫의 날을 감지 않은, 그야말로 날이 시퍼렇게 보이는 낫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어디선가 일을 하다말고 낮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겠지요.
그 어른과 마주쳐야 했던 길은 좁은 시골길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냥 마주치자니 행여라도 술에 취한 그 어른이 낫을 휘두르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등골이 다 오싹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지레짐작 겁을 먹고 도망이라도 치면 자신을 보고 도망을 치는 나를 보며 저 어른이 얼마나 민망해 할까, 나는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땡볕이 내리쬐는 길가에 그냥 서 있었습니다. 그 날 그 어른은 비틀거리는 걸음새로 아무 일도 없이 내 곁을 지나갔지만 어른이 지나가는 그 순간 등짝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지요.
그 때의 기억은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 낯선 사람에 대해 어디까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낯선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턱 믿고 마주하기엔 주저되는 면이 있고, 그렇다고 대놓고 외면하거나 피하기에는 민망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그렇게 어정쩡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언젠가 후배가 찾아와 살아가면서 무엇이 그 중 힘드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하다가 그에게 했던 대답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을 겪게 되고, 그런 일들 속에는 실망스러운 일이 적지 않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실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사람들에게서 실망을 느끼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문이 닫히고 맙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름다운 일입니다. 갈수록 믿을 사람이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끝내 사람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에 우리의 희망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5.6.2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어느 뜨거운 여름날의 일이 제겐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일지 5학년일지, 여름방학 때의 일로 기억됩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는데, 저수지 근처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집도 서너 채 있었습니다.
뜨거운 한낮, 저수지 옆 솔밭을 따라 친구네 집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저만치 앞에서 한 남자어른이 걸어오는데, 그 분은 낮술에 취했는지 걸음이 비틀거렸습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랍고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어른의 손에 낫 한 자루가 들려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으로도 낫의 날을 감지 않은, 그야말로 날이 시퍼렇게 보이는 낫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어디선가 일을 하다말고 낮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겠지요.
그 어른과 마주쳐야 했던 길은 좁은 시골길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냥 마주치자니 행여라도 술에 취한 그 어른이 낫을 휘두르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등골이 다 오싹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지레짐작 겁을 먹고 도망이라도 치면 자신을 보고 도망을 치는 나를 보며 저 어른이 얼마나 민망해 할까, 나는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땡볕이 내리쬐는 길가에 그냥 서 있었습니다. 그 날 그 어른은 비틀거리는 걸음새로 아무 일도 없이 내 곁을 지나갔지만 어른이 지나가는 그 순간 등짝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지요.
그 때의 기억은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 낯선 사람에 대해 어디까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낯선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턱 믿고 마주하기엔 주저되는 면이 있고, 그렇다고 대놓고 외면하거나 피하기에는 민망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그렇게 어정쩡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언젠가 후배가 찾아와 살아가면서 무엇이 그 중 힘드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하다가 그에게 했던 대답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을 겪게 되고, 그런 일들 속에는 실망스러운 일이 적지 않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실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사람들에게서 실망을 느끼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문이 닫히고 맙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름다운 일입니다. 갈수록 믿을 사람이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끝내 사람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에 우리의 희망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5.6.2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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