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2199. 사람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한희철 | 2005.12.10 18:23:4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아 만든 돌무더기, 그 앞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 그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산에서 숨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떠났던 이들이 마침내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여 돌무덤으로 장사를 지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침내 해냈구나, 짧은 순간 전율이 지나갔습니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에베레스트 정상을 찾는 휴먼원정대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서너 주 전이었습니다. 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휴먼원정대에 대해 우연히 이야기를 듣고서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싶어 한동안 마음이 멍했습니다.
박무택, 백준호, 장민 씨는 지난 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동료를 구하려다 모두 목숨을 잃었다니 단순히 안타깝다거나 아름답다 하기에는 마음 끝이 아렸습니다. 서로의 몸을 묶고 있는 지름 0.5cm의 자일은 팽팽히 당겨져 있는 데다가 영하의 강추위에 얼어있어 칼로 툭 갖다대기만 해도 끊어진다고 합니다. 만년설이 쌓여 있는 고산을 오르다보면 수없이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되고 그 때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될 터인데,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동료의 목숨과 바꾸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동료를 살리려다 끝내 생사를 같이 했습니다. 산을 좋아하다 산의 품에 안겼다고 자위하며 동료를 외면했다면 나는 살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동료를 버리느니 동료를 구하다가 같이 목숨을 잃었다니 그보다 진한 동료애가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함께 숨진 그들이 1년여 동안 묻혀있는 곳은 에베레스트 산 정상이나 다름없는 8,750m 부근, 전문산악인조차도 혼자서 오르내리기에 벅찬 그곳에서 숨진 이들을 수습한다는 것은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할 일, 또 한번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동료를 그 산꼭대기에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한 엄홍길 등반대장을 비롯한 휴먼원정대는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길을 떠났고, 온갖 악천후와 체력저하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얼음덩어리가 되어 절벽에 매달려 있던 동료의 시신을 거둬 에베레스트의 품에서 장사를 지냈던 것이었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배신과 배반을 일삼는 이 세상에서, 소속과 정당은 물론 그토록 목소리를 높여 자랑했던 소신마저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세상 속에서 죽은 동료를 위해 내 목숨을 내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살아 생전 박무택 대원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검게 그을린 엄홍길 대장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우리의 얄팍한 마음을 쇠망치처럼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숨진 동료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산에 올랐던 산사람들에게 벅찬 감동으로 마음의 박수를 보냅니다. 사람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를 당신들은 이 얄팍하고 비겁한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2005.6.8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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