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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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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일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녀온 첫째 아이의 표정이 밝질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학교 선생님이 붙여준 별명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이‘미친년 로봇’이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겠지 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마침 첫째 아이는 바르지 못한 이의 위치를 바로 잡기 위해 치아 교정기를 낀 터였습니다. 치아 교정기를 끼고 학교에 처음 간 날 선생님으로부터 얻은 별명이 ‘미친년 로봇’이었고, 아이들은 그 말이 재미있었는지 열심히 별명을 불렀던 것입니다. 한동안 아이는 웃음을 잃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알아보니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붙여준 별명은 그런 식이었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라고 그냥 웃음으로 받기에는 문제가 많은 것들이었습니다.‘강아지’나‘오소리’등은 차라리 귀여운 별명이었습니다.‘껄떡쇠’도 있었고, ‘반찬국물 코찔찔이’로 시작되는 긴 별명도 있었고, ‘최돈대갈빡통’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던 것은 두 자매에게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언니는‘개날라리똥통’이었고, 동생은‘못난이’였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그들이 겪는 가정의 아픔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별명을 붙이다니, 무엇보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붙여준 별명으로 서로의 이름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좋은 이름을 두고 흉잡듯 서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막 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젊은 분이었고, 그러기에 더욱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에 간절함이 넘쳤습니다.
언젠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미국을 다녀오며 하루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같이 잠을 잔 일행 셋이 간단한 식사를 위해 한 식당을 찾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한 분이 그곳에서 일하는 분을 ‘princess(프린세스, 왕비)’라고 부르고 있었던 점입니다. 그를 부를 때도 그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한결같이‘princess’라 불렀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친근했던지 정말로 그의 이름이‘princess’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이름은 ‘다이애나’였습니다. 비록 비운의 삶을 마감했지만 다이애나라는 영국 왕비의 이름을 따라 다이애나 대신‘프린세스’라는 애칭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키가 작고 체구도 넉넉한, 영락없는 ‘아줌마’였지만 그는 자신을 ‘프린세스’라 불러주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고마워하며 행복해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즐거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이애나를 프린세스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몇 년 전 바로 그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지금은 어디에서 자기 반 아이들을 무엇이라 부를까,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몸짓’에서 ‘의미’로 변한다는데 한창 꿈을 꾸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평생 별이 될만한 이름을 붙여줄 순 없는 것인지, 선생님이 걸어갈 교직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2005.6.1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겠지 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마침 첫째 아이는 바르지 못한 이의 위치를 바로 잡기 위해 치아 교정기를 낀 터였습니다. 치아 교정기를 끼고 학교에 처음 간 날 선생님으로부터 얻은 별명이 ‘미친년 로봇’이었고, 아이들은 그 말이 재미있었는지 열심히 별명을 불렀던 것입니다. 한동안 아이는 웃음을 잃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알아보니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붙여준 별명은 그런 식이었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라고 그냥 웃음으로 받기에는 문제가 많은 것들이었습니다.‘강아지’나‘오소리’등은 차라리 귀여운 별명이었습니다.‘껄떡쇠’도 있었고, ‘반찬국물 코찔찔이’로 시작되는 긴 별명도 있었고, ‘최돈대갈빡통’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던 것은 두 자매에게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언니는‘개날라리똥통’이었고, 동생은‘못난이’였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그들이 겪는 가정의 아픔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별명을 붙이다니, 무엇보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붙여준 별명으로 서로의 이름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좋은 이름을 두고 흉잡듯 서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막 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젊은 분이었고, 그러기에 더욱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에 간절함이 넘쳤습니다.
언젠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미국을 다녀오며 하루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같이 잠을 잔 일행 셋이 간단한 식사를 위해 한 식당을 찾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한 분이 그곳에서 일하는 분을 ‘princess(프린세스, 왕비)’라고 부르고 있었던 점입니다. 그를 부를 때도 그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한결같이‘princess’라 불렀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친근했던지 정말로 그의 이름이‘princess’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이름은 ‘다이애나’였습니다. 비록 비운의 삶을 마감했지만 다이애나라는 영국 왕비의 이름을 따라 다이애나 대신‘프린세스’라는 애칭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키가 작고 체구도 넉넉한, 영락없는 ‘아줌마’였지만 그는 자신을 ‘프린세스’라 불러주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고마워하며 행복해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즐거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이애나를 프린세스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몇 년 전 바로 그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지금은 어디에서 자기 반 아이들을 무엇이라 부를까,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몸짓’에서 ‘의미’로 변한다는데 한창 꿈을 꾸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평생 별이 될만한 이름을 붙여줄 순 없는 것인지, 선생님이 걸어갈 교직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2005.6.1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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