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
바보 슐레밀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슐레밀이 자기 마을을 지나가던 한 나그네로부터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넓은 세상엔 얼마나 신기한 일이 많은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그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슐레밀은 다음 날 짐을 꾸려 길을 떠났습니다. 넓고 신기한 세상을 향해 뜨거운 뙤약볕 아래 한 나절 길을 걸어간 슐레밀은 잠시 쉬어가기 위해 길가 옆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슐레밀은 자기가 가던 길의 방향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신을 벗어 신의 앞쪽이 자기가 가는 길의 방향이 되도록 머리맡에 벗어놓았습니다.
마침 그 길을 슐레밀과 같은 마을에 사는 방아쟁이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보니 슐레밀이 길가에서 잠을 자는데 머리맡에 가지런히 신발이 놓여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방아쟁이는 장난을 치기 위해 신의 방향을 슬며시 거꾸로 돌려놓고는 자기 길을 갔습니다.
실컷 잠을 자고 깬 슐레밀은 머리맡에 벗어놓은 신을 신고 신의 방향대로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풍경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들이었습니다. 슐레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세상이 넓다보니 별 일도 다 있구나. 어쩌면 내가 지나온 동네와 비슷한 곳이 또 있단 말인가?’ 하며 길을 계속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릴 무렵 도착한 동네는 정말로 슐레밀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영락없이 자기가 살던 동네와 똑같았습니다. 집들도 같았고, 길도 같았고, 사람들도 같았습니다. 아침에 떠났던 슐레밀이 저녁이 되어 다시 자기 동네로 되돌아온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슐레밀은 끝까지 자기가 살던 동네와 똑같은 동네에 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상이 넓다보니 이런 놀라운 일도 있다고 신기해 할 뿐이었습니다. 마을 원로들은 회의 끝에 슐레밀을 원래의 슐레밀 집에서 살도록 도와줍니다. 자기 집에서 자기 부인과 자기 자식들과 함께 살면서도 슐레밀은 자기 집과 똑같은 집에서 자기 부인과 똑같이 생긴 부인과 자기 자식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는 그 곳을 떠나 진짜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자기 집에서 자기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도 어느 낯선 동네에서 잠깐 임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 슐레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하겠지만 바보 슐레밀의 모습 속에는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내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내게 주어진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채 삶의 주변을 서성이며 두리번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말입니다. 내게 주어진 삶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 당연하고 쉬워 보이는 일이 우리에겐 큰 숙제처럼 여겨집니다. 2005.6.1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나그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슐레밀은 다음 날 짐을 꾸려 길을 떠났습니다. 넓고 신기한 세상을 향해 뜨거운 뙤약볕 아래 한 나절 길을 걸어간 슐레밀은 잠시 쉬어가기 위해 길가 옆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슐레밀은 자기가 가던 길의 방향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신을 벗어 신의 앞쪽이 자기가 가는 길의 방향이 되도록 머리맡에 벗어놓았습니다.
마침 그 길을 슐레밀과 같은 마을에 사는 방아쟁이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보니 슐레밀이 길가에서 잠을 자는데 머리맡에 가지런히 신발이 놓여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방아쟁이는 장난을 치기 위해 신의 방향을 슬며시 거꾸로 돌려놓고는 자기 길을 갔습니다.
실컷 잠을 자고 깬 슐레밀은 머리맡에 벗어놓은 신을 신고 신의 방향대로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풍경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들이었습니다. 슐레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세상이 넓다보니 별 일도 다 있구나. 어쩌면 내가 지나온 동네와 비슷한 곳이 또 있단 말인가?’ 하며 길을 계속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어둠이 내릴 무렵 도착한 동네는 정말로 슐레밀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영락없이 자기가 살던 동네와 똑같았습니다. 집들도 같았고, 길도 같았고, 사람들도 같았습니다. 아침에 떠났던 슐레밀이 저녁이 되어 다시 자기 동네로 되돌아온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슐레밀은 끝까지 자기가 살던 동네와 똑같은 동네에 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상이 넓다보니 이런 놀라운 일도 있다고 신기해 할 뿐이었습니다. 마을 원로들은 회의 끝에 슐레밀을 원래의 슐레밀 집에서 살도록 도와줍니다. 자기 집에서 자기 부인과 자기 자식들과 함께 살면서도 슐레밀은 자기 집과 똑같은 집에서 자기 부인과 똑같이 생긴 부인과 자기 자식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는 그 곳을 떠나 진짜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자기 집에서 자기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도 어느 낯선 동네에서 잠깐 임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 슐레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하겠지만 바보 슐레밀의 모습 속에는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내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내게 주어진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채 삶의 주변을 서성이며 두리번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말입니다. 내게 주어진 삶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 당연하고 쉬워 보이는 일이 우리에겐 큰 숙제처럼 여겨집니다. 2005.6.1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
|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