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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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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는 들머리에 있는 한 한국식당 벽에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액자가 가득 붙어 있습니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식당을 찾은 소감을 쓴 것을 식당에서 액자에 담아 붙여둔 것 같습니다.
액자에 적힌 이름을 보면 그 면면이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 적지가 않습니다. 각 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며, 대기업의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 몇 몇 대학의 학장들, 화가와 작가 등 예술인들의 이름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글을 써 준 이들은 외국에 자신의 이름자를 남기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듯하고, 식당은 식당대로 홍보효과를 볼 일일 테니 서로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듯합니다.
며칠 전 그 식당에 들러 식사를 주문하고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벽에 걸려있는 글을 읽게 되었는데, 액자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무총리가 다녀가며 남긴 글이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정겹습니다"
글은 '정겹다'고 썼지만 와 닿는 느낌은 뭔가 불편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니 이내 짚이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마침 부모님과 동석하게 된 중학생이 있어 그 글을 읽어 보라 하고 느낌을 물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가 대답을 했습니다.
"저렇게 쓰면 한국에 사는 분들이 화내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런 점이 아쉬웠습니다. 아무리 외국에 나와서 한인식당을 찾았다 하여도, 그리고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동포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글 한 줄을 남긴다 하여도 가려 써야 할 말은 가려 써야 했습니다. 그 글은 한국에 사는 이들과 외국에 나와 사는 이들을 너무 쉽게 비교하고 있었고, 외국에 사는 이의 편을 당연한 듯이 들어 오히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설령 정말로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하여도 공인으로서 그런 글을 남기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할 일없는 사람처럼 사소한 일을 트집잡는다 할지 몰라도 위의 글은 이렇게 썼어야 옳았지 싶습니다.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맛있고 정겹습니다"
두 마리 소를 부리는 농부에게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냐고 길을 지나던 황희 정승이 물었을 때, 큰 소리로 대답을 하는 대신 황희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대답을 했다는 농부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한 마리만 일을 잘 한다고 말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그래서 소들이 듣지 못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물며 소가 들을까봐도 말을 삼갔는데, 대놓고 액자에 남긴 말은 두고두고 생각을 하게 합니다. '보다'와 '처럼'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할 줄 아는 이가 보다 많은 이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2005.9.7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액자에 적힌 이름을 보면 그 면면이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 적지가 않습니다. 각 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며, 대기업의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 몇 몇 대학의 학장들, 화가와 작가 등 예술인들의 이름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글을 써 준 이들은 외국에 자신의 이름자를 남기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듯하고, 식당은 식당대로 홍보효과를 볼 일일 테니 서로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듯합니다.
며칠 전 그 식당에 들러 식사를 주문하고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벽에 걸려있는 글을 읽게 되었는데, 액자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무총리가 다녀가며 남긴 글이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정겹습니다"
글은 '정겹다'고 썼지만 와 닿는 느낌은 뭔가 불편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니 이내 짚이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마침 부모님과 동석하게 된 중학생이 있어 그 글을 읽어 보라 하고 느낌을 물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가 대답을 했습니다.
"저렇게 쓰면 한국에 사는 분들이 화내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런 점이 아쉬웠습니다. 아무리 외국에 나와서 한인식당을 찾았다 하여도, 그리고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동포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글 한 줄을 남긴다 하여도 가려 써야 할 말은 가려 써야 했습니다. 그 글은 한국에 사는 이들과 외국에 나와 사는 이들을 너무 쉽게 비교하고 있었고, 외국에 사는 이의 편을 당연한 듯이 들어 오히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설령 정말로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하여도 공인으로서 그런 글을 남기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할 일없는 사람처럼 사소한 일을 트집잡는다 할지 몰라도 위의 글은 이렇게 썼어야 옳았지 싶습니다.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맛있고 정겹습니다"
두 마리 소를 부리는 농부에게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냐고 길을 지나던 황희 정승이 물었을 때, 큰 소리로 대답을 하는 대신 황희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대답을 했다는 농부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한 마리만 일을 잘 한다고 말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그래서 소들이 듣지 못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물며 소가 들을까봐도 말을 삼갔는데, 대놓고 액자에 남긴 말은 두고두고 생각을 하게 합니다. '보다'와 '처럼'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할 줄 아는 이가 보다 많은 이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2005.9.7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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