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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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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인사말이 되어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시대마다 인사말은 바뀌게 마련이고, 바뀌는 인사말 속에는 시대의 흐름이나 분위기가 담기기 마련이라고 할 때,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에 담긴 우리 시대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너무 쉽게 단정할 것은 아니겠지만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인사말로 자리를 잡은 데에는 재물에 대한 관심이 삶의 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시대 풍조와 무관하지 않을 듯 합니다. 재물에 대한 관심보다도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는 있는 법이고, 재물에 대한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을 부끄럽거나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대놓고 모두가 물질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 속에는 부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정말로 그런 것인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대신 너무 쉽게 그런 생각이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는 것 같아 마음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진정한 부자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원했던 것이 사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부자라면 모두가 꿈꿔도 좋을 일이겠지만, 단지 많은 재물을 의미하는 부자라면 함부로 나눌 인사는 아니지 싶습니다.
언젠가 '부자와 빈자'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저승길, 심판관 앞에 한 부자가 섰다. 세상 살 때 그러했듯 그는 위세가 당당했다. 그를 본 심판관이 말했다.
"불쌍한 인생아, 너는 부유했지만 네 부의 기초는 다른 사람의 눈물이었다. 괴로움의 방으로 가라." 부자는 풀없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역시 부자였던 이가 몹시 두려운 낯빛으로 섰다. 심판관이 말했다.
"위로 받을지라. 네 부는 네 땀의 결과였다. 땀이 네게 부를 주었을 때 너는 괴로워했다. 어느 게 네 몫이며 어느 게 나눌 몫인지를. 위로의 방으로 가라."
부자에게 내리는 판결을 본 한 빈자가 다행스러운 얼굴로 심판관 앞에 섰다. 한동안 빈자의 얼굴을 쳐다보던 심판관이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지고. 넌 가난했지만 오직 너를 위해 가난했구나. 네가 가난했던 것은 오직 하나,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네 명예 때문이었다. 그 명예를 잃고 싶지 않아 넌 분명 게을렀다. 한숨의 방으로나 가거라."
그러자 다음 번에 서 있던 한 빈자가 심판관이 입을 열기도 전 먼저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로나 보내 주십시오."
그러나 심판관의 판결은 달랐다.
"스스로 가난하여 스스로 넘친 자여. 모두 주고도 모두 남은 듯 사랑으로 마음 밑바닥 긁던 소리를 내 들었느니라. 큰 부자여, 네가 닦아준 눈물이 꽃들로 피어난 기쁨의 방으로 가거라. 거기가 네 방이니라.">
부자를 꿈꾸되 스스로 가난하여 스스로 넘치는, 진정한 부자 되는 한해를 빌어봅니다. 2006.1.1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너무 쉽게 단정할 것은 아니겠지만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인사말로 자리를 잡은 데에는 재물에 대한 관심이 삶의 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시대 풍조와 무관하지 않을 듯 합니다. 재물에 대한 관심보다도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는 있는 법이고, 재물에 대한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을 부끄럽거나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대놓고 모두가 물질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 속에는 부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정말로 그런 것인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대신 너무 쉽게 그런 생각이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는 것 같아 마음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진정한 부자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원했던 것이 사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부자라면 모두가 꿈꿔도 좋을 일이겠지만, 단지 많은 재물을 의미하는 부자라면 함부로 나눌 인사는 아니지 싶습니다.
언젠가 '부자와 빈자'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저승길, 심판관 앞에 한 부자가 섰다. 세상 살 때 그러했듯 그는 위세가 당당했다. 그를 본 심판관이 말했다.
"불쌍한 인생아, 너는 부유했지만 네 부의 기초는 다른 사람의 눈물이었다. 괴로움의 방으로 가라." 부자는 풀없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역시 부자였던 이가 몹시 두려운 낯빛으로 섰다. 심판관이 말했다.
"위로 받을지라. 네 부는 네 땀의 결과였다. 땀이 네게 부를 주었을 때 너는 괴로워했다. 어느 게 네 몫이며 어느 게 나눌 몫인지를. 위로의 방으로 가라."
부자에게 내리는 판결을 본 한 빈자가 다행스러운 얼굴로 심판관 앞에 섰다. 한동안 빈자의 얼굴을 쳐다보던 심판관이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지고. 넌 가난했지만 오직 너를 위해 가난했구나. 네가 가난했던 것은 오직 하나,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네 명예 때문이었다. 그 명예를 잃고 싶지 않아 넌 분명 게을렀다. 한숨의 방으로나 가거라."
그러자 다음 번에 서 있던 한 빈자가 심판관이 입을 열기도 전 먼저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로나 보내 주십시오."
그러나 심판관의 판결은 달랐다.
"스스로 가난하여 스스로 넘친 자여. 모두 주고도 모두 남은 듯 사랑으로 마음 밑바닥 긁던 소리를 내 들었느니라. 큰 부자여, 네가 닦아준 눈물이 꽃들로 피어난 기쁨의 방으로 가거라. 거기가 네 방이니라.">
부자를 꿈꾸되 스스로 가난하여 스스로 넘치는, 진정한 부자 되는 한해를 빌어봅니다. 2006.1.1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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