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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황금 오이, 늙은 오이를 들고 걸어가는 할매 뒤로 허수아비가 늠름하구나. 동네는 시방 허수아비가 주민들보다 여나무명은 더 많아 보인다. 삼계의 미소를 짓는 부처님 관상을 한 허수아비, 빨간 모자에 빨간 웃옷을 걸치고 마치 삼복더위에 찾아온 산타클로스 같은 허수아비. 새가 머리끝에 앉아도 드르렁 코를 곯아대는 잠보 허수아비, 외다리로 서서도 휘청거림이라곤 일절 없는 ‘요기’ 허수아비. 우리 집 뒤편 사래밭에 보면 청청한 하늘을 정답게 이고 진 부부 허수아비도 보인다. 마주보고 서서 윙크가 간지럽구나. 정녕 허수아비 마을이고 허수아비 세상이로다.
문설주를 막 나서면 허수아비가 맨 먼저 반긴다. 저녁나무가 외롭지 않게 해거름엔 그림자로 달려와 덥석 안기고는 한다. 모주망태, 허위허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수아비에 대고 실없는 소리를 엥긴다. “어이 봉산 양반. 날도 저물었는디 거그서 뭐하고 계신다요. 집서 기다린디 밭일 접어불고 싸게 들어 가시장게라” 물때 절은 툇마루에 푸덕 앉았을 그 아재, 재작년 하직한 단짝친구 봉산 양반이 그리도 보고 싶었던 모양인 게지.
〈임의진|목사·시인>2007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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