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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눈이라 뭐라고 써졌는지는 몰르겄고 자네가 알아서 대신 내주게.” 주민세 고지서였다.
읍내 나가는 길에 다른 심부름도 시키신다. 개 사료 여러 포대, 논둑 정리한다고 예초기 날도 날쌍한 것으로다가 하나.
나는 남들보다 고등학교를 두 배나 오래 다닌 이력부터 시작하여 가방 끈이 이날 평생 목을 졸랐다. 그야말로 오리지널 빨간책인 대학생 형들의 금서목록을 훑어보다가 학교 공부가 심심해져버렸다. 학업을 작파한 이후, 끔찍한 ‘사랑의 매’에 시달려야 했고, 마구간에 갇힌 말처럼 울다 쫄다 학교들을 마쳤다. 그래도 오늘날 주민세 대신 내주는 정도면 이 바닥에선 배운 사람 축에 낀다. 명문대 박사 따위 명함도 못 내밀지. 고상하고 도도한 위인들은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일자무식 상팔자 아재, 부려먹으면서도 고맙단 얼굴이 아니다. 받아온 영수증과 대신 장을 보아온 물건들을 착착 툇마루에 올리자 잔돈부터 빨랑 내놓으란다.
“막걸리라도 사묵었는가?”
“돈 천원 남습디다. 여기요.”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냉큼 주머니에 넣네.
“애썼구마. 가서 일 보소.” 조폭 큰형님이 따로 없다.
〈임의진|목사, 시인〉 2007년 0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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