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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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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네는 정말 동네 같았다.
마을 한복판엔 우물이 있었고, 마을 한 켠으론 개울이 흘렀다.
우물은 그야말로 마을의 중심이어서 집집마다 그곳에서 물을 길었고 어머니들은 쌀을 씻었다. 우물이 있어 마을에 사는 그 누구도 남이 될 수가 없었고, 남이 아니었다.
개울은 빨래터이자 아이들에겐 좋은 물놀이터였다. 비가 오고 나면 저수지에서 물을 따라 올라온 손바닥만한 붕어들도 제법 잡아 올리곤 했다.
어릴 적 동네가 동네 같았던 것 중의 하나는 매일 저녁마다 동네를 들썩거렸던 동네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났다.
"야, 야, 애들 나와라! 여자는 필요 없고 남자 나와라!"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예의 익숙한 목소리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나면 이내 아이들이 깨알 쏟아지듯 달려 나와 만세잡기며 술래잡기며 동네는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깔려들 무렵이면 이번에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동네를 울렸다.
"아무개야, 밥 먹어라!"
동네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아쉬움으로 저물곤 했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동네엔 싸움도 흔했다.
고만고만한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허구한 날 어울리다보니 어디 싸움이 그칠 날이 흔했겠는가?
어떤 때는 코피가 나도록 뒤엉겨 싸우기도 해서, 누가 코피가 나느냐가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경험한 바 아이들 싸움은 흔히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어릴 적 그 흔했던 싸움을 생각할 때 아이들 싸움에 대한 어머니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어떤 어머니들은 무조건 제 자식 편을 들었다. 어떤 어머니는 감정이 격해 지 자식과 싸운 아이에게 욕을 해대기도 했고, 손찌검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 싸움은 크게 번졌고, 동네가 다시 평온을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곤 했다.
끝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그건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최악의 경우였다.
그러나 어떤 어머니는 달랐다.
싸움이 벌어졌고 제 자식이 거기에 연루되어 있을 경우, 무조건 제 자식부터 두들겨 팼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싸움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흠씬 두들겨 맞아야 했다.
자식으로서는 정말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장 든든한 우군인줄 알았던 엄마가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부터 패다니, 맞아서 아프기보다는 마음이 억울했고 그래서 더 크게 엉엉 서럽게 울어댔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식을 때리는 것이 엄마의 사랑이요, 지혜였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기도 했고, 싸움이 확대되는 것을 막는 쐐기이기도 했다. 엄마가 자식을 패는 것을 보면 싸웠던 아이가 나서 제가 잘못했다고 자기의 잘못을 빌기도 했고, 싸운 집 엄마가 달려 나와 지 자식을 때리고 있는 엄마를 말리며 자신의 부덕함을 미안하다 사과하기도 했다.
그런 날 저녁이면 아버지들끼리 만나 술 한 잔을 건네며 화해를 했고, 그날 밤으로 모든 감정은 사라져 다음날 아침 우물가에서 서로 만나도 크게 어색함이 없었다.
(눈여겨보면 사정없이 자식을 팬다고는 하지만 엄마가 자식을 패는 부위는 대개가 엉덩이였다. 소리는 요란하고 다칠 염려는 적은 곳,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렇게 지혜로웠을까!)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로 모두의 마음이 어둡고 무겁다.
스무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음에도 많은 말들이 오간다. 섬뜩한 말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는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어쩌다 교회가 이렇게까지 사람들로부터 멀어졌을까, 마음이 어질어질할 정도다.
그에 못지않게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있는데, 교회와 믿는 자들의 태도다.
교회를 탓하는 이들을 함께 탓하며, 선교와 봉사의 당위성을 변호한다. 목숨을 건 봉사와 선교의 숭고함을 항변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얘기가 왜 없겠는가?
누군들 없겠는가?
허위와 위선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오히려 비난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더 많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아이들 싸움에 제 자식이 끼었을 경우 잘잘못을 따지기 전 무조건 제 자식부터 두들겨 팼던 어머니의 마음과 태도를 생각해야 한다.
갈등의 와중엔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옳은 얘기면 옳은 얘기일수록 골은 더 깊어지고 흠집은 크게 남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를 맞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떠나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매를 맞는 것이다.
그래야 매를 맞는 아이도 정신을 차리고, 어려운 순간도 지나간다.
제발, 제발,
부디, 부디,
오늘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어릴 적 동네 어머니의 속 깊은 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멍자국을 애처롭게 쓰다듬더라도, 지금은 우리가 매를 맞아야 할 때이다.
2007.8.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마을 한복판엔 우물이 있었고, 마을 한 켠으론 개울이 흘렀다.
우물은 그야말로 마을의 중심이어서 집집마다 그곳에서 물을 길었고 어머니들은 쌀을 씻었다. 우물이 있어 마을에 사는 그 누구도 남이 될 수가 없었고, 남이 아니었다.
개울은 빨래터이자 아이들에겐 좋은 물놀이터였다. 비가 오고 나면 저수지에서 물을 따라 올라온 손바닥만한 붕어들도 제법 잡아 올리곤 했다.
어릴 적 동네가 동네 같았던 것 중의 하나는 매일 저녁마다 동네를 들썩거렸던 동네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났다.
"야, 야, 애들 나와라! 여자는 필요 없고 남자 나와라!"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예의 익숙한 목소리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나면 이내 아이들이 깨알 쏟아지듯 달려 나와 만세잡기며 술래잡기며 동네는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깔려들 무렵이면 이번에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동네를 울렸다.
"아무개야, 밥 먹어라!"
동네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아쉬움으로 저물곤 했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동네엔 싸움도 흔했다.
고만고만한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허구한 날 어울리다보니 어디 싸움이 그칠 날이 흔했겠는가?
어떤 때는 코피가 나도록 뒤엉겨 싸우기도 해서, 누가 코피가 나느냐가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경험한 바 아이들 싸움은 흔히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어릴 적 그 흔했던 싸움을 생각할 때 아이들 싸움에 대한 어머니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어떤 어머니들은 무조건 제 자식 편을 들었다. 어떤 어머니는 감정이 격해 지 자식과 싸운 아이에게 욕을 해대기도 했고, 손찌검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 싸움은 크게 번졌고, 동네가 다시 평온을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곤 했다.
끝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그건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최악의 경우였다.
그러나 어떤 어머니는 달랐다.
싸움이 벌어졌고 제 자식이 거기에 연루되어 있을 경우, 무조건 제 자식부터 두들겨 팼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싸움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흠씬 두들겨 맞아야 했다.
자식으로서는 정말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장 든든한 우군인줄 알았던 엄마가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부터 패다니, 맞아서 아프기보다는 마음이 억울했고 그래서 더 크게 엉엉 서럽게 울어댔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식을 때리는 것이 엄마의 사랑이요, 지혜였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기도 했고, 싸움이 확대되는 것을 막는 쐐기이기도 했다. 엄마가 자식을 패는 것을 보면 싸웠던 아이가 나서 제가 잘못했다고 자기의 잘못을 빌기도 했고, 싸운 집 엄마가 달려 나와 지 자식을 때리고 있는 엄마를 말리며 자신의 부덕함을 미안하다 사과하기도 했다.
그런 날 저녁이면 아버지들끼리 만나 술 한 잔을 건네며 화해를 했고, 그날 밤으로 모든 감정은 사라져 다음날 아침 우물가에서 서로 만나도 크게 어색함이 없었다.
(눈여겨보면 사정없이 자식을 팬다고는 하지만 엄마가 자식을 패는 부위는 대개가 엉덩이였다. 소리는 요란하고 다칠 염려는 적은 곳,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렇게 지혜로웠을까!)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로 모두의 마음이 어둡고 무겁다.
스무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음에도 많은 말들이 오간다. 섬뜩한 말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는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어쩌다 교회가 이렇게까지 사람들로부터 멀어졌을까, 마음이 어질어질할 정도다.
그에 못지않게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있는데, 교회와 믿는 자들의 태도다.
교회를 탓하는 이들을 함께 탓하며, 선교와 봉사의 당위성을 변호한다. 목숨을 건 봉사와 선교의 숭고함을 항변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얘기가 왜 없겠는가?
누군들 없겠는가?
허위와 위선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오히려 비난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더 많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아이들 싸움에 제 자식이 끼었을 경우 잘잘못을 따지기 전 무조건 제 자식부터 두들겨 팼던 어머니의 마음과 태도를 생각해야 한다.
갈등의 와중엔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옳은 얘기면 옳은 얘기일수록 골은 더 깊어지고 흠집은 크게 남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를 맞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떠나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매를 맞는 것이다.
그래야 매를 맞는 아이도 정신을 차리고, 어려운 순간도 지나간다.
제발, 제발,
부디, 부디,
오늘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어릴 적 동네 어머니의 속 깊은 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멍자국을 애처롭게 쓰다듬더라도, 지금은 우리가 매를 맞아야 할 때이다.
2007.8.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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