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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어느 날의 단상들

이해인 이해인............... 조회 수 2820 추천 수 0 2008.08.18 21: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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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821

어느날의 단상들

1.새에게

살아갈수록 가볍고 싶은데 살아갈수록 내가 무겁구나.
얼굴은 숨기고서 노래로만 노래로만 말을 하는 작은 새야, 아직도 사랑과 눈물이 부족해서 나는 너처럼 빼어난 시인이 될 수 없나보다.
내가 미련해서 놓쳐버린 시어들도 네가 대신 노래로 불러주겠지?
나도 언젠가는 너처럼 가벼울 수 있도록 숨어서 숨어서 기도해주겠니?

2. 사과

까만 씨앗에 박혀 있는 햇빛과 바람의 언어를 캐고 싶어.
가슴에 묻어오는 흙내음을 맡고 싶어.
사과는 언제나 만나도 싫증나지 않는 기쁨의 둥근 얼굴.
사과를 보면 정다운 친구 하나 꼭 부르고 싶어.
발갛게 물든 추억의 고운 껍질을 까듯,
잘 익은 사과를 깎아 친구에게 건네주고 싶어.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사근사근하고 신선한 행복의 맛.

3. 집

세월이 가도 마음은 늙지 않아 그대로인 집.
집은 낡았어도 정은 새롭네.
대문을 열면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리고
빨래를 너는 어머니의 하얀 무명 앞치마에 머무는 햇살.
어린 동생의 웃음소리가 채송화로 피어나고
시를 읽는 언니의 목소리가 도라지 꽃 빛으로 살아오는 꽃밭에
가벼운 시처럼 내려앉는 한 마리의 흰 나비
팽이를 치는 오빠 옆에서 고무줄 넘기를 하던 단발머리의 나
그리고 오래 잊고 있던 나의 노랫소리도 들려오는 우리 집 앞마당
팽이처럼 돌아가는 어제의 기억과 고무줄처럼 팽팽한 오늘의 시간이
서로 손을 잡고 새로운 기쁨을 탄생시키네.

4.베개

밤마다 나는 꿈을 눕히는 엄마의 무릎 같은 베개.
아무에게도 이야기 못한 내 은밀한 기쁨과 고뇌의 무게를 참을성 있게 받쳐주는 푹신한 쉼터.
베갯잇의 꽃무늬도 꽃밭으로 춤추며 살아오는 밤.
작은 베개 하나로 온 세상을 베듯 눈을 감으면 환희 열리는 시의 나라.

5. 무명성

이름 없는 풀, 이름 없는 새, 이름 없는 순교자.
이름이 없음으로 하여 왠지 더욱 가깝고 순결하게 느껴지는 것들.
사람들 사이, 사물들 사이 뽐내는 이름들이 하도 많아, 더욱 돋보이는 하얀 무명성. 세상이라는 이 큰 산에서 이름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담담할 수 없는 것일까. 바위 틈에 숨어 핀 이름 없는 들꽃처럼 그렇게 조용히 비켜 살 수는 정말 없는 것일까.

6. 꽃 멀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7. 마른 꽃

장미꽃, 안개꽃, 냉이꽃, 제비꽃, 아카시아꽃, 민들레꽃 - 말린 꽃들이 가득한 나의 방에선 언제나 마른 향기가 나고, 유년의 추억을 풀꽃반지처럼 끼고 사는 나는 꽃잎마다 어린 사랑과 이별의 이야길 들으며 마른 향내나는 기도의 숲으로 들어간다. 눈물도 말라서 꽃이 되는 은혜로움이여.

8. 빈 방에서

내가 입다 걸어 둔 한 벌의 허름한 옷. 몸과 삶이 빠져나와 쓸쓸하구나.
이 지상에서의 나의 날개에 묻어 있는 온갖 고뇌와 그리움의 때는 빨지 않아도 정답구나. 오래 걸어둔 한 벌의 옷이 비어 있듯, 내가 비어있음으로 편안하구나.

9. 해바라기꽃

눈부셔라. 날마다 그리움에 키만 크고, 할 말을 다 못해 씨알로 영글어 가는 그토록 많은 분량의 안타까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해바라기 꽃이 됨을 해 아래 서서 오래도록 생각해 보네.

10. 해질 무렵

나를 만나고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내가 느꼈던 쓸쓸한 평온함 같은 것.
해질 무렵이 되면 삶은 하나의 이별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네.
철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눈물이 없어진다는 뜻일까. 그만큼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해가 떠나면서 내게 보내준 그 마지막 눈빛을 못내 잊지 못하네.
나는 다시 철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가라앉히네.

11. 고추를 찧으며

해 아래 불타던 붉은 고추를 절구에 찧으며 사랑을 찧는 연습을 하네. 나를 보네. 눈물나도록 아프게 익혀서 매운 속마음. 부서지기 어려워 망설이는 걸까. 피를 토하는 절규. 그래도 참아야 하네. 사랑은 고추처럼 참 독하기도 하지. 모질기도 하지.

12. 나와의 싸움

엉겅퀴처럼 뻣뻣하게 잘도 뻗어가는 고집과 오만의 가시. 쑥처럼 흔하게 아무데서나 잘도 돋는 이기심과 허영심의 잎새. 모조리 다 뽑아낼 순 없어도 언제 한번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을까. 나 아닌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나와의 싸움에서 언제 한번 그럴 듯하게 나를 이겨 볼 수 있을까.  

13. 아무래도 나는

누구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결국은 이렇듯 나 자신만 챙겼음을 다시 알았을 때 나는 참 외롭다. 많은 이유로 아프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 곁을 몸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 비켜가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을 때, 나는 참 부끄럽다. '아무래도 나는 가망이 없구나' 한숨 쉬며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는 슬픈 결심을 해본다. 지키지도 못할 -.

14.하루의 문을 닫으며

길을 가다가 내게 길을 물었던 어느 이웃의 둥근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전철에서 내게 자리를 양보했던 어느 이웃의 서늘한 눈매가 보이는 것 같다.
저녁이 되어,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이웃의 창마다 나는 기쁨의 종을 달아주는 님프가 되고 싶다. 집집마다 들어가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놓고 몰래 빠져 나와 하늘의 별을 보고 깔깔 웃어도 보는 반딧불 요정이고 싶다. 멀리 있어도 집채로 내게 가까이 오는 수많은 이웃의 불켜진 창을 보며 내 마음의 창에도 오색 찬란하게 타오르는 고마움의 불빛, 함께 있음의 복됨이여.

15. 어느 날의 일기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되는 일이야.
사랑하는 이들과 갑자기 헤어지는 일.
그 날 그 날의 책임을 한 톨도 소홀히 하지 않는 일.
보이는 사람과의 약속.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는 일.
그리고 내 삶의 끝 날에 마침표를 잘 찍는 일
-깊이 생각할수록 조심스러운 일이야.  

16. 폭포 앞에서

수천 번 수만 번 소용돌이치던 내 그리움의 물살도 당신 앞에 오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는 물의 힘에 놀라듯 오늘도 감당 못할 당신의 큰 사랑에 놀라 침묵의 바위를 깨고 힘차게 부서지는 이 마음의 물살이여, 하얀 기도여 -

17.고독에게

눈 내리는 벌판에 쏟아져 내리는 겨울 햇빛처럼 눈부시게 다가온 너.
너와 더불어 수 십년을 살면서 네 높은 생각에 미치지 못해 나는 쓸쓸할 때가 많았지. 네가 없었다면 매일 새벽, 나를 부르시는 그분의 어진 음성을 듣지 못했을거야.
사랑의 싸움 그치고 난 뒤의 화해의 눈물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를, 죽을 때는 누구나 혼자 떠난다는 비애의 경건한 마음을 받아들이지는 못했을거야.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되지만 고독이여,
너와 함께 썰매를 타며 겨울을 이겨내는 기쁨이 있단다.  ⓒ이해인(수녀) <꽃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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