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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사랑할 땐 별이 되고

이해인 이해인............... 조회 수 2687 추천 수 0 2008.08.18 2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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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833

사랑할 땐 별이 되고

 

1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기도에 못지 않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민감한 센스. 재치와 함께.

2.
성서를 읽다가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성구(聖句)가 마음에 와 닿았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서로 눈치 챌 수도 없지만 우리 각자는 하루하루 내면의 선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기심을 버리고 좀더 넓어지려는, 좀 더 깊어지려는 그리고 좀 더 따뜻해지려는 선한 싸움을...

3.
늘 바다 가까운 하늘에서 떠오르던 해를 보다가 오늘은 동백섬 옆 산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았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 언제라도 가슴이 설렌다. 햇볕이 잘 드는 방에서 사는 고마움. 햇볕은 습기, 곰팡이도 없애주고 우리에게 밝음, 기쁨을 선사해 준다.
나도 늘상 햇볕 같은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
큰 수술 뒤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환자가 회복실에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새삼 감격스러워 하듯이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나에겐 새날이요, 보물로 꿰어야 할 새 시간이요,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임을 잊지 말자.

5.
'아주 작은 것, 하찮은 것에서도 이기심을 품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그러나 결국 나보다는 남을 좀 더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만 진정한 평화가 있음을 체험했지? 좋은 일에도 이기심과 욕심은 금물이야. 이것만 터득해도 살기가 좀 더 쉬워질텐데... 그렇지?'
방으로 가는 층계를 오르다가 문득 멈추어 서서 내가 나 자신을 향해 했던 말.

6.
바쁨 속에도 기쁨과 평화가 있다. 유순한 마음, 좋은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할 때는 정신 없이 바빠도 짜증이 나지 않고 즐겁다.
나의 삶이 노래가 된다는 것은 그럭저럭 시간을 메우는 데 있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정성껏 살아가는 데 있는 것이다.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리는 젊음이지만 비록 나이가 들더라도 가슴엔 노래가 흐르게 하라. 혼자 있어도 즐거울 수 있는 노래의 기쁨.

7.
어린 시절, 혼자만의 비밀 서랍을 갖고 즐거워했던 것처럼 내 마음 안에도 작은 서랍이 있다. 사랑과 우정과 기도, 내 나름대로의 좌우명과 아름다운 삶의 비결을 모아 둔 비밀 서랍. 그래서 누가 나를 좀 힘들게 하더라도 이 서랍에서 얼른 지혜를 꺼내 최선을 다하면 슬프지 않다.

8.
식탁에서 어떤 이가 나더러 "그리 복잡한 가운데서도 10여년 전 책갈피에 끼워 놓았던 자료까지 다 찾아내는 걸 보면 정말 놀랍다니까요.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할 수 있지요?" 하는 말을 듣고 그 옆자리에 있던 다른 이가 말했다.
"아마 우리는 잘 이해 못하지만 하느님의 기억력은 더하시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여럿이라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사랑하시는 참 놀라운 분이시잖아요." 수도생활을 나보다 훨씬 오래 한 선배 수녀님의 그 진지하고도 소박한 표정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 전 내가 방을 옮겼다고 고운 유리컵과 과자 한 봉지를 내가 없는 사이 살짝 두고 가셨던 티나 수녀님의 고운 마음 또한.

9.
주일(主日)이 주는 고즈넉한 평화와 기쁨. 주일만큼이라도 평일에 숨차게 뛰었던 자신을 쉬게 해주고, 필요한 영적 활력을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나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야 남을 위한 배려나 봉사도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
탁 트인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보는 내 마음엔 그대로 푸른 시(詩)와 기도가 흐르네.
수평선을 바라보며 매일 사는 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특권이요 기쁨인지! 오늘은 바닷가 산책 중에 손을 씻으려다가 실수로 발목까지 다 적시게 되었지만 그 느낌이 매우 좋았다. 강물, 시냇물,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
짜디짠 소금물에 발을 담갔으니 내 마음에도 조금은 소금물이 들었겠네.

11.
새벽부터 나의 단잠을 깨우는 새소리. 문득 잠을 깨면 나뭇가지의 새들도, 키 큰 나무도 가만히 내 방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정다운 느낌이다.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정향나무 한 그루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지.
"나무야, 네 눈빛만 보아도 나는 행복해. 쓰러질 듯 가느다란 몸으로 그토록 많은 잎과 열매를 키워내는 너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더욱 살고 싶어져. 모든 슬픔을 잊게 돼. 바람에 흔들이는 네 소리만 들어도 나는 네 마음을 알 것 같아. 모든 이를 골고루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애쓰는 너. 우리 엄마처럼 웬만한 괴로움은 내색도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네 깊은 속마음을 알 것 같단 말이야."

12.
어떤 별에게 -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르지만 산에서 하늘을 보면 금방이라도 가까이 제 곁에 내려앉을 것 같습니다. 다른 별에 비하면 지구는 아주 작은 별이라는 걸 얼른 이해할 수 없듯이 때로는 그 안에 먼지처럼 작은 내가 있음을 자주 잊어버리며 삽니다.
요즘은 혜성, 목성의 거대한 충돌로 온 세계가 하늘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큰 별과 별, 천체의 부딪힘이 신기하고 놀랍듯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어느 순간  섬광처럼 부딪쳐 일어나는 사랑의 사건 또한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것인가요?
누군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그 황홀한 내면의 빛은 소리 없이 활활 타올라 우주를 밝히고 세상을 구원합니다.  그래서 사랑할 땐 우리도 별이 되고 이미 별나라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심하게 부딪치고도 깨어지지 않는 지상에서의 사랑을 별나라에까지 들고 갑니다. ⓒ이해인(수녀) <사랑할 땐 별이 되고/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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