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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10 추천 수 0 2014.12.23 21: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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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7.겨울나무
 
푸르고 울창했던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나무가 빈 가지로 서 있습니다. 찬바람 속 빈 가지로 선 겨울나무는 마치 침묵의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들 같습니다. 기도는 감추거나 보태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서서 바치는 것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한 때의 울창함이 자랑이 아님을, 빛깔의 화려함으로 우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겨울나무는 말없이 가르칩니다. 우리가 자랑했던 모든 것을 가볍게 내려놓고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돌아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말없이 전합니다.
빈 가지 사이로 드러난 새 둥지에 눈이 갑니다. 거기 새의 보금자리가 있었다는 것을 이파리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몰랐지요. 나무는 자신의 품에 둥지를 튼 새가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사나운 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깊은 품으로 감싸주어 맘 놓고 새끼를 까고 키우게 했던 것이지요. 괜한 궁금증이겠지요, 그렇게 떠난 새가 이듬해 봄 다시 찾아오면 새와 나무는 서로를 알아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나무는 알몸으로 서서 자기 품에 허전하게 남은 빈 둥지를 내보이며 내가 한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고 하늘에 고하는 것도 같습니다. 한 영혼을 품는 일은 지극하고도 지난한 일, 결코 가볍거나 사소하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했고,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은 인류를 살리는 일과 같다고 했는데요. 우리의 삶을 마칠 때에도 겨울나무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으면, 마음을 다해 품었던 영혼 아주 없지 않았다고 같은 기도 드릴 수 있었으면, 문득 마음이 간절하고 가난해집니다.
이웃집 마당 감나무에 남은 서너 개의 까치밥에도 마음이 갑니다. 굳이 욕심을 부린다면 비록 서너 개라 할지라도 따로 남길 필요가 있었을까요. 얼마든지 긴 장대를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높은 사다리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요. 서너 개 남은 감 속에는 메마른 세상 속에서도 아주 사라지지 않은 푸근한 인정이 남아있습니다. 까치와 참새가 번갈아 찾아와 언 감을 쪼는 모습에서 함께 사는 삶이 든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단순함을 배웁니다. 자기만의 배를 채우는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을 까치밥은 보며 떠올립니다.
그나저나 겨울나무는 긴 긴 겨울 동안 물기를 어디다 두는 것일까요? 자기 몸 어디에 물기를 두어 별빛조차 얼어붙는 겨울밤을 견디는 것일까요? 채찍처럼 불어대는 찬바람 앞에 꽁꽁 언 몸 뚝 뚝 부러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얼어 죽는 것을 피한다며 물기를 모두 비우면 이내 찾아올 것은 목마름, 아무리 겨울이라 하여도 목마름 또한 견딜 수가 없을 텐데요. 아무런 투정 없이 겨울을 견뎌 이듬해 봄 어김없이 잎과 꽃을 내는, 겨울나무의 속 깊은 인내에도 마음이 갑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나 겨울나무, 겨울나무의 말없는 가르침이 우리와 가깝습니다. 눈여겨 바라보는 이에게, 귀 기울여 듣는 이에게 겨울나무는 좋은 벗이자 스승이 됩니다. 긴 긴 겨울을 보내며 겨울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사 번잡하고 시끄러울수록 겨울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깊고 따뜻하고 나직하여 덩달아 우리 마음도 그윽해질 것입니다.  
2007.12.10.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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