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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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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7.겨울나무
푸르고 울창했던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나무가 빈 가지로 서 있습니다. 찬바람 속 빈 가지로 선 겨울나무는 마치 침묵의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들 같습니다. 기도는 감추거나 보태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서서 바치는 것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한 때의 울창함이 자랑이 아님을, 빛깔의 화려함으로 우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겨울나무는 말없이 가르칩니다. 우리가 자랑했던 모든 것을 가볍게 내려놓고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돌아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말없이 전합니다.
빈 가지 사이로 드러난 새 둥지에 눈이 갑니다. 거기 새의 보금자리가 있었다는 것을 이파리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몰랐지요. 나무는 자신의 품에 둥지를 튼 새가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사나운 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깊은 품으로 감싸주어 맘 놓고 새끼를 까고 키우게 했던 것이지요. 괜한 궁금증이겠지요, 그렇게 떠난 새가 이듬해 봄 다시 찾아오면 새와 나무는 서로를 알아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나무는 알몸으로 서서 자기 품에 허전하게 남은 빈 둥지를 내보이며 내가 한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고 하늘에 고하는 것도 같습니다. 한 영혼을 품는 일은 지극하고도 지난한 일, 결코 가볍거나 사소하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했고,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은 인류를 살리는 일과 같다고 했는데요. 우리의 삶을 마칠 때에도 겨울나무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으면, 마음을 다해 품었던 영혼 아주 없지 않았다고 같은 기도 드릴 수 있었으면, 문득 마음이 간절하고 가난해집니다.
이웃집 마당 감나무에 남은 서너 개의 까치밥에도 마음이 갑니다. 굳이 욕심을 부린다면 비록 서너 개라 할지라도 따로 남길 필요가 있었을까요. 얼마든지 긴 장대를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높은 사다리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요. 서너 개 남은 감 속에는 메마른 세상 속에서도 아주 사라지지 않은 푸근한 인정이 남아있습니다. 까치와 참새가 번갈아 찾아와 언 감을 쪼는 모습에서 함께 사는 삶이 든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단순함을 배웁니다. 자기만의 배를 채우는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을 까치밥은 보며 떠올립니다.
그나저나 겨울나무는 긴 긴 겨울 동안 물기를 어디다 두는 것일까요? 자기 몸 어디에 물기를 두어 별빛조차 얼어붙는 겨울밤을 견디는 것일까요? 채찍처럼 불어대는 찬바람 앞에 꽁꽁 언 몸 뚝 뚝 부러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얼어 죽는 것을 피한다며 물기를 모두 비우면 이내 찾아올 것은 목마름, 아무리 겨울이라 하여도 목마름 또한 견딜 수가 없을 텐데요. 아무런 투정 없이 겨울을 견뎌 이듬해 봄 어김없이 잎과 꽃을 내는, 겨울나무의 속 깊은 인내에도 마음이 갑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나 겨울나무, 겨울나무의 말없는 가르침이 우리와 가깝습니다. 눈여겨 바라보는 이에게, 귀 기울여 듣는 이에게 겨울나무는 좋은 벗이자 스승이 됩니다. 긴 긴 겨울을 보내며 겨울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사 번잡하고 시끄러울수록 겨울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깊고 따뜻하고 나직하여 덩달아 우리 마음도 그윽해질 것입니다.
2007.12.10. ⓒ한희철 목사
푸르고 울창했던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나무가 빈 가지로 서 있습니다. 찬바람 속 빈 가지로 선 겨울나무는 마치 침묵의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들 같습니다. 기도는 감추거나 보태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서서 바치는 것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한 때의 울창함이 자랑이 아님을, 빛깔의 화려함으로 우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겨울나무는 말없이 가르칩니다. 우리가 자랑했던 모든 것을 가볍게 내려놓고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돌아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말없이 전합니다.
빈 가지 사이로 드러난 새 둥지에 눈이 갑니다. 거기 새의 보금자리가 있었다는 것을 이파리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몰랐지요. 나무는 자신의 품에 둥지를 튼 새가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사나운 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깊은 품으로 감싸주어 맘 놓고 새끼를 까고 키우게 했던 것이지요. 괜한 궁금증이겠지요, 그렇게 떠난 새가 이듬해 봄 다시 찾아오면 새와 나무는 서로를 알아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나무는 알몸으로 서서 자기 품에 허전하게 남은 빈 둥지를 내보이며 내가 한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고 하늘에 고하는 것도 같습니다. 한 영혼을 품는 일은 지극하고도 지난한 일, 결코 가볍거나 사소하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했고,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은 인류를 살리는 일과 같다고 했는데요. 우리의 삶을 마칠 때에도 겨울나무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으면, 마음을 다해 품었던 영혼 아주 없지 않았다고 같은 기도 드릴 수 있었으면, 문득 마음이 간절하고 가난해집니다.
이웃집 마당 감나무에 남은 서너 개의 까치밥에도 마음이 갑니다. 굳이 욕심을 부린다면 비록 서너 개라 할지라도 따로 남길 필요가 있었을까요. 얼마든지 긴 장대를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높은 사다리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요. 서너 개 남은 감 속에는 메마른 세상 속에서도 아주 사라지지 않은 푸근한 인정이 남아있습니다. 까치와 참새가 번갈아 찾아와 언 감을 쪼는 모습에서 함께 사는 삶이 든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단순함을 배웁니다. 자기만의 배를 채우는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을 까치밥은 보며 떠올립니다.
그나저나 겨울나무는 긴 긴 겨울 동안 물기를 어디다 두는 것일까요? 자기 몸 어디에 물기를 두어 별빛조차 얼어붙는 겨울밤을 견디는 것일까요? 채찍처럼 불어대는 찬바람 앞에 꽁꽁 언 몸 뚝 뚝 부러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얼어 죽는 것을 피한다며 물기를 모두 비우면 이내 찾아올 것은 목마름, 아무리 겨울이라 하여도 목마름 또한 견딜 수가 없을 텐데요. 아무런 투정 없이 겨울을 견뎌 이듬해 봄 어김없이 잎과 꽃을 내는, 겨울나무의 속 깊은 인내에도 마음이 갑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나 겨울나무, 겨울나무의 말없는 가르침이 우리와 가깝습니다. 눈여겨 바라보는 이에게, 귀 기울여 듣는 이에게 겨울나무는 좋은 벗이자 스승이 됩니다. 긴 긴 겨울을 보내며 겨울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사 번잡하고 시끄러울수록 겨울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깊고 따뜻하고 나직하여 덩달아 우리 마음도 그윽해질 것입니다.
2007.12.10.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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