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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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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2879
길을 냅시다
길이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 길이든, 곳곳의 길이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고,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몰랐던 도로가 시원하게 뚫리고 포장도 잘 되어 전국토가 사통팔달, 어디든 지척이 되어 있는데 길이 막히다니,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며 당장 제 말을 부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 막혀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사람이 다니는 길인 인도를 걸어보면 길이 막혀있음을 실감합니다. 불법으로 주차된 자동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고, 가게에서 내어놓은 상품이 길을 점령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도 자체가 갑자기 사라져 할 수 없이 차도로 내려설 때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심하고 다닐 만큼의 편안한 길이 많지를 않습니다. 빠른 속도로 바로 곁을 스쳐지나가는 자동차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폐달을 밟아야 합니다. 자전거 때문에 추월을 나가지 못한 자동차가 바로 뒤에서 경적이라도 울려대면 등에선 진땀이 나지요.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 있습니다. 내 나라 내 땅을 걸어보고 싶은 꿈입니다. 남쪽 끝에서 북쪽 끝이든,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이든 우리의 산하를 내 발로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자동차가 아닌 내 발로 내 나라 내 땅의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을 만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지를 순례하는 것과 다르지 않겠다 싶었지요.
때마침 임지를 옮기게 되어 좋은 기회를 가졌다 싶었는데 결국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넉넉한 시간이 허락되질 않았습니다. 잠깐의 틈이 주어졌을 뿐, 먼 길을 나설 만큼의 시간은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시간이 주어졌다 해도 훌쩍 길을 나서기는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걸어서 내 나라를 순례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한 말 중에 그 중 많았던 말이 ‘위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마음 놓고 다닐 길과 마음 놓고 피곤한 몸을 뉘일 곳이 생각만큼 많지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했고 불성실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안심하고 다닐 길이 많지 않다는 말도 가볍게 물리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길이 막혔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마음의 길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길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를 믿는 신뢰와 서로를 아끼는 정성과 따뜻하게 나누는 정이 어느 샌지 사라져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모두가 모두에게 낯선 존재로 전락한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새해가 밝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새해에는 새로운 길이 뚫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내 앞에 막힌 것을 치워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마음 놓고 다니도록 길이 뚫리고, 자전거 길이 뚫리고, 짐승이 다니는 길이 뚫리고, 너와 나 사이의 마음의 길이 뚫리고, 모든 길이 뚫려 바람처럼 우리의 발걸음과 마음이 가볍고 자유롭고 아름답기를, 새해를 맞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꿉니다. 2007.12.30.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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