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외면해선 안 될, 외면할 수 없는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02 추천 수 0 2014.12.23 21:12:37
.........

한희철2880


외면해선 안 될, 외면할 수 없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였을까요? 아련한 시간을 더듬어보지만 허옇게 빛이 바랜 흑백사진 같은 시간들이 마구 순서가 엉겨 딱히 떠오르는 순간이 없습니다. 예의 수줍고 선한 그의 웃음이 떠오르는 매순간마다 눈에 선해 처음 만났던 순간을 찾아내기가 더욱 쉽지가 않습니다.
어쩌면 첫 예배를 드리던 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눈깨비 사납게 날리는 빈 들판을 한없이 지나 땅 끝을 향하듯 찾아들어간 곳. 거기서 다시 비포장 길을 달려 만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동네. 그나마 진눈깨비가 잠시 잦아든 갑수네 집 마당, 서너 평 되는 사랑방 예배처소를 두고 빙 마당에 둘러서서 예배를 드리던 단강교회 창립예배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 누가 누군지를 몰랐으니까요.
비록 잎담배를 널어 말리던 사랑방을 치워내고 시작하는 초라한 예배였지만 마을에 처음으로 교회가 들어서는 그 시간에 그가 빠졌을 리는 없을 것 같으니까요. 어디선가 마른 몸을 옹크리고 앉아 그 모든 과정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겠지요.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얘기가 고파 몇 번이고 사택 주변을 배회하다 우연처럼 전도사를 만나고, 같은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인사하고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가다 다시 내려와 그래도 빠뜨린 얘기가 있다며 얘길 또 하고, 어쩌면 그런 순간이 그를 처음 만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예배 중에 문이 열렸고, 뒤늦게 예배당을 찾은 그의 손엔 한 다발 꽃이 들려 있었습니다. 들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이었습니다. 들에서 일하던 차림 그대로인 그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인데도 망설일 것도 없이 앞으로 나와 제단에 선 내게 꽃을 전했고, 꽃을 받아든 나는 정성스레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올려놓고 보니 꽃을 담아온 병은 소주병, 그렇게 마음을 젖게 했던 날은 아마도 그를 만나지 제법 여러 달이 지난 후였지 싶습니다.
우리 목사님 마음을 움직여서 이쁜 색시 하나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던 순간은 분명 우리가 만난 지 꽤 여러 해가 지난 후였을 테고요. 그런 속마음을 털어놓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으니까요.  
작실 음짓말 언덕배기, 동네로부터 서너 걸음 물러선 듯 자리 잡은 그의 집은 그나마 사람의 온기로 겨우 버티고 있지 싶었습니다. 기우뚱 기운 토담집 시커멓게 그을린 흙벽에는 서툰 글씨로 적힌 글 하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난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유난히 키가 작은 그의 막내 동생 봉철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까치발을 하고서 쓴 글이었습니다. 한창 꿈을 키울 나이, 그런데 봉철이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글을 벽에 적었을까, 지금까지 남아있는지 모를 그 글은 봉철이의 얼굴과 함께 화인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어딘지도 모르고 찾아가 창립 예배를 드린 첫 목회지, 그렇지만 시간을 잊고 고향처럼 살았던 단강에서 만난 이웃들 중에는 광철 씨가 있습니다. 비쩍 마른 몸매, 흐릿한 눈빛, 더듬는 말투, 누구 하나 선뜻 가까이 가지 않았던 그는 늘 내 곁에서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주고는 했습니다. 외면해선 안 될, 외면할 수 없는 이웃이 가장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광철 씨의 웃음은 지금도 눈에 선한데 그가 가르쳐 준 가르침을 나는 지금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위의 글은 <아름다운 동행> '내가 만난 그리스도인' 코너에 쓴 글입니다.  2008.1.3. ⓒ한희철 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647 이현주 방금 심겨진 씨앗이다, 너는 이현주 2015-03-16 392
8646 이해인 작은 기도 이해인 2015-04-08 392
8645 이현주 소리가 북을 만나면 북소리를 낸다 이현주 2015-03-16 393
8644 김남준 그리스도 안의 지체들 김남준 2014-09-12 394
8643 김남준 인간의 상대적인 용서 김남준 2014-10-01 395
8642 한희철 감사합니다 한희철 2014-12-13 395
8641 김남준 구별된 존재이신 하나님 김남준 2014-07-07 396
8640 한희철 본래의 시간으로 한희철 2014-12-23 397
8639 이해인 안녕히 가십시오- 추모시 이해인 2014-12-31 397
8638 김남준 다른 동기 김남준 2014-08-05 398
8637 김남준 하나님의 절대적인 용서 김남준 2014-10-01 398
8636 임의진 [시골편지]벌초 임의진 2014-10-26 398
8635 김남준 일용할 양식의 범위 김남준 2014-08-23 399
8634 이해인 산 위에서 이해인 2015-03-20 399
8633 김남준 용서와 영혼의 자유 김남준 2014-10-13 402
8632 김남준 악에서 구하옵소서 김남준 2014-10-27 402
» 한희철 외면해선 안 될, 외면할 수 없는 한희철 2014-12-23 402
8630 임의진 [시골편지] 책 읽어주는 여자 임의진 2014-10-26 403
8629 김남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김남준 2014-07-07 404
8628 김남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인간 김남준 2014-08-23 404
8627 김남준 노동으로 얻은 한 조각의 거친 음식 김남준 2014-09-18 407
8626 임의진 [시골편지] 평양냉면 임의진 2014-10-26 408
8625 이해인 삶이 무거우니 이해인 2015-04-16 409
8624 김남준 이미 받은 용서 -영원한 용서 김남준 2014-09-23 410
8623 한희철 겨울나무 한희철 2014-12-23 410
8622 임의진 [시골편지] 새들의 염불, 새들의 찬송 임의진 2014-05-14 411
8621 이현주 몸 따로 마음 따로 이현주 2014-12-23 411
8620 한희철 어깨에 얹은 손 한희철 2014-10-29 412
8619 이현주 감사할 것들 이현주 2014-11-18 413
8618 김남준 시험의 의미 김남준 2014-10-14 414
8617 이현주 편안한 침묵 이현주 2014-10-31 414
8616 김남준 죄와 악 김남준 2014-10-27 415
8615 임의진 [시골편지] 칠레로 가는 국경버스 임의진 2014-05-14 416
8614 김남준 하나님이 창조하신 두 세계 김남준 2014-08-14 416
8613 임의진 [시골편지] 팔짱을 낀 달과 별과 골목과 사랑 임의진 2014-05-14 417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