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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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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2881
내비게이션과 마중
*생활정보지 <교차로>에 '아름다운 사회' 칼럼을 일주일에 한 번 쓰고 있습니다. 이번 주 원고를 아래에 썼던 글을 참고 하여 '내비게이션과 마중'이라는 제목으로 썼습니다.*
새로운 기계 하나가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실감할 때가 있습니다. 내비게이션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요즘 웬만한 자동차엔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차창에 붙여서 사용하는 것들도 있고, 아예 자동차에 내장형으로 들어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디든 주소를 입력하면 길 안내를 척척 합니다. 주변의 빌딩이나 큰 건물들이 화면에 나오는 것은 물론 고속방지턱이나 속도위반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곳, 위험다발구역까지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어떤 땐 경고음을 내기도 하고 어떤 땐 잘했다고 박수를 치는 것도 같습니다. 인공위성으로 자동차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길 안내를 한다는 것이 때마다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내비게이션이 보급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마중입니다. 누가 손님이 온다 하면 버스 정류장이든 골목 입구 신작로이든 마중을 나가 손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님이 오면 손님과 함께 집으로 오던 마중이 어느 샌지 모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중을 나가는 대신 주소를 알려주면 대개는 집을 찾아옵니다. 찾아가는 사람도, 맞이하는 사람도 따로 수고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며칠 전이었습니다. 막 땅거미가 깔려드는 시간에 예배당 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날이 제법 차가워 외투의 깃을 세우고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예배당과 인접해 있는 연립주택 마당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 아기 엄마가 아기를 포대기에 감싸 등에 업은 채 마당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추운 저녁에 아기를 업고 웬일일까 싶어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는데, 어둠이 내리는 그 시간에 왜 밖에 나와 있는지를 대번 알게 되었습니다.
막 연립주택 입구 쪽에서 자동차 불빛이 비추자 아기 엄마가 등에 업은 아기에게 "아빠 오신다!" 하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 목소리에는 반가운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가까이 오자 아기 엄마는 차가 주차하는 곳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갔습니다.
날은 차가웠지만 아기 엄마는 아기와 함께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기꺼이 마당까지 나와 마중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아기 엄마 자신도 하루 종일 아기와 씨름을 하여 피곤할 터이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방에서 편하게 맞이하는 대신 집밖으로 나가 마중을 한 것이니, 그 모습이 더없이 정겨워보였습니다.
그렇게 만난 남편과 아내는 서로가 감당한 하루의 수고를 고마운 입맞춤으로 나눴을까요, 입맞춤이 쑥스러웠다면 가만 서로의 손을 맞잡고 집으로 향했을까요, 어쩌면 하루 종일 보고 싶었던 아기를 아빠가 덥석 안았을까요, 그렇게 들어서는 집에서는 알맞은 불에 올려놓은 된장찌개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잘 끓고 있지 않았을까요. 어둠이 내리는 추운 마당에 나와 남편을 마중하는 아기 엄마의 모습은 마중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보급으로 어디든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 마중의 정겨움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중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정이 담긴 소중한 미덕이기 때문입니다. 2008.1.8.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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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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