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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보리차 끓는 소리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193 추천 수 0 2016.04.21 10: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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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어투로 노래하던 마왕은 떠나고 없네. 빗자루 탄 마녀들은 밤새 펑퍼짐한 엉덩이를 붙이며 지상의 권력을 탐하고들 있겠지. 비행기 빗자루가 그어놓은 구름은 수천 갈래길. 마음같이 어지러웠는데 엊그제 고대하던 폭설로 그나마 암흑의 평화. 간혹 켜는 라디오에선 캐럴 대신에 조정을 어지럽히는 무뢰배들의 난투극뿐. 검게 마른 산열매라도 찾아 나선 새가 나직이 노래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쓸쓸한 세월이런가. 이 귀양살이 선비는 오늘도 배고픈 새들의 ‘절친’이라네.


눈 오고 추우니 산골은 인적이 끊겼어. 잉걸불 타오르자 주전자에 물 끓는 소리. 언젠가 러시아에서 백야를 보았는데 그날도 난 어떻게 보리차를 구해 마셨지. 밤이 없어도 나는 보리차를 마시면 그냥 밤인 줄 믿어지더라구. 뜨거운 보리차를 불어마시던 젖은 입술과 찻잔을 든 야윈 손가락을 기억해. 임진강 오리떼들이 소롯이 내려와 물주전자에서 왁자글거리는 듯. 물이 끓는 소리는 목포행 완행열차의 기척도 같아.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아아아 부슬비에 젖어가는 그 밤에도 보리차를 마시면 마음에 위안이 되더라구.

 
우리 지구행성은 태양 주위 공전 궤도를 무려 시속 16만킬로미터로 돌고 있다네. 이 엄청나게 큰 소리엔 하나도 관심이 없고 보리차 끓는 작은 소리는 왜 마음이 가는 걸까. 예민한 귀로 경청하는 당신이여. 귓불을 스쳐오는 사랑의 속삭임. 젖먹이 아가는 엄마가 윗옷 단추만 하나 풀어도 침이 고여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네. 나는 당신이 안겨주는 보리차 한 잔에도 이렇게 감격해 ‘땡큐 땡큐’가 연방 터져.


나는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몰라. 불특정 다수와 교제가 쉽지 않아. 그거 없이도 좋은 친구들 충분하고. 전자 화면보다 종이로 글을 나눠야 영혼이 전달되는 거 같아. 마찬가지로 설설 끓어 뜨끈한 보리차 한 잔이면, 그런 소박한 심호흡이면 그제야 살겠구나 싶어지더라.


ⓒ 임의진 | 목사·시인


댓글 '1'

하늘감사

2016.04.21 13:03:30

보리차를 유독 좋아하는 친구가 생각나네요.
40년 넘은 친구, 지금은 퉁퉁한 아줌마가 되어 가끔씩 얼굴을 보면
그때 그 보리차를 좋아하며 환히 웃던 대학생 모습이 어디로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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