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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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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인 내가 십 년 넘게 정 붙이고 사는 베이스캠프엔 날마다 진한 커피향과 죽로차. 담양 평야 흰쌀로 지은 밥상과
할매들이 퍼준 묵은지. 고기반찬은 누구 제사 때나 한번쯤. 이 집엔 화장실이 두 군데 있다네. 안채에 딸린, 따순 목욕물도 나오는 수세식. 불편해도 즐겨 찾는 바깥 푸세식. 매실밭, 감밭에 거름도 쓸 겸 마련한 푸세식. 잔디밭을 가로질러 개집을 지나 한참 걸어야 푸세식이 나온다. 이름하여 수양각. 수양을 좀 해야겠다 싶어 지은 이름. 앉아 있으면 대숲 바람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오지.
박남준 시인이 모악산 살 때 종종 놀러갔는데 “의진아. 변소에 으쩌다 보면 뱀도 나오니깐 조심해라이. 변태귀신이 똥 누는 거 몰래 보기도 하니깐 잘 살피고오~.” 막돌로 허술하게 쌓은 그 변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튼실하고 야무지게 지은 수양각. 득도할 때까지만 수양각 출입을 하고, 이후엔 하늘나라에서 별똥을 눠야지 생각해. 여기서 봄 여름 가을은 물론 심지어는 폭설을 뚫고 기어들어가 큰일을 본다.
장강명의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미안하지만 수양각에다 놓고 한 달여 만에 독파했지. 재미있는 장면이 끊긴 게 아쉬우면 하루에 똥을 두 번 눴다네.
변소는 좀 멀리 있어야 해. 정신적인 환기도 물론이고 산기슭에서 엉덩이를 드러낼 때의 그 차가움이 나를 본래의 야성, 야생으로 이끄는 듯해. 화장지가 떨어질 때 쓰라고 둔 게 아니라 읽으라고 놓아둔 성경책도 있다. 군부대 설교 갔다 얻어온 손바닥 기드온 성경. 일 보다 읽을 게 없으면 성경책을 높이 들어. 커흐, 주님께 쏘리입니다요. 성경이 지루하면 쪼그려 졸기까지. 뒷간에서 사계절이 빙글빙글 돌 듯 예수님 스토리도 사복음서로 복잡 다양.
예수 생애를 기술한 교과서는 각양각색 4종.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예루살렘과 바티칸에서 확정고시한 단일하고 유일한 국정 따위 없다.
국정 화장실 수세식과 달리 비국정 푸세식에서 나는 지대한 수양 중. 나에게 도가 있다면, 이것은 전부 수양각에서 얻은 것. 내게 복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수양각에서 읽은 사복음서 덕분이리라. ‘수양이 모자라서’ 수양각을 매일 찾는다. 당신도 수양각이 한 채쯤 생기기를….
임의진 | 목사·시인 201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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