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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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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교회 살 때 현판 글씨가 필요해서 우이(쇠귀) 선생님께 부탁드렸는데 며칠 만에 써주셨다. 간판집에 부탁해 예배당 입구에 걸었는데 할매 교인들이 글씨가 왜 삐툴빼툴 하냐고 배래부렀소 그 양반헌티 다시 써달라 그라시쑈 막걸리 자시고 쓰셨는갑소, 땡깡을 놓는 것이었다. 주동자 할매한테 염빙하시네 해부렀지. 예배가 끝나면 조용히 살다가 죽어 천국에나 가자는 찬송가 말고 김민기와 한대수 금지곡들을 주로 틀었는데 그 노래들이 찰지게 귀청을 울리고는 하였다. 옥이라는 끝자를 가진 그 할매 뒤통수에 대고 한대수는 ‘옥의 슬픔’을 불러줬는데 귀엽고 쓸쓸했던 그 할매, 궁둥이를 삐짝빼짝하면서 늙은 바둑이랑 동무하며 소리길 따라 멀리 사라지고는 하였다.
“바람찬 바닷가로 옥이는 나서서 밀려오는 파도에 넋을 잃은 채 인생의 실망 속에 자신 찾을 수 없이 꽃잎도 파도 위로 수평선을 따라서 저 초원도 가고요 저 눈물도 썰물로 아아 슬픈 옥이여”. 해창이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자전거 타고 심방을 가면은 파도가 무너지고 없는 갯벌의 시간, 거기 옥이 할매가 바지락을 파고 주저앉아 계셨다. 남녘사람들은 그렇게 갯일도 하고 논밭일도 하면서 대처 나간 자식들을 고생스레 갈쳤다. 찬바람에 시린 눈물이 썰물과 함께 사라졌기를. 남녘 현판의 주인공 쇠귀 선생님도 감옥 없고 국가보안법 없는 좋은 세상 가셨기를.
나는 옥자가 붙은 이름을 들으면 엄마 같단 생각에 살가워진다. 내게도 옥이라는 끝자를 지닌 이름의 큰누님이 있는데, 누나는 지금도 돌아가신 엄마 자리를 꿰차고 계신다. 고등학생 시절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갈 곳 없어진 내게 방 한 칸 내어주셨지. 슬펐던 가난은 그러나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심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요 며칠 눈이 어마무시하게 내렸다. 나는 여행보따리를 싸고 그 눈길을 뚫고서 기어 마을을 빠져나왔다. “권태에 못 이겨서 집을 떠났다.” 옥의 슬픔 노랫말처럼 그리되는 중이렷다. 우쿨렐레와 하모니카도 둘러멨으니 당분간은 유랑악사다. 옥의 슬픔을 불러보리라. 슬픔이 우리 곁에서 멀리 사라지는 그날까지.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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