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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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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나는 멕시코 시골마을에 도마뱀처럼 낮게 머물고 있다네. 베라크루스 여기서 가까운 치아파스. 과거엔 인디오 혁명군들, 근래엔 신자유주의와 맞선 전사들이 숨어든 땅. 사파티스타 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아저씨. 별 세 개가 박힌 베레모와 손잡이가 긴 파이프 담배가 인상적인 반란군 대장님. 몇 해 전 원주민 출신 장군에게 사령관직을 물려주고 훌훌 뒷전으로 물러났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리 도시는 병들었소. 병세가 위급해야 치료를 서두르죠. 수백만 배로 커져가는 이 집단적 고독감. 자신을 발견하고, 무력감의 원인을 찾아야죠. 이 도시는 칙칙한 옷을 벗고 밝은 빛깔로 장식하게 될 거요. 난 먼저 시골에서 오색 리본으로 장식을 시작할 거요.”
멕시코 남동부 산악지대에서 부사령관은 날마다 편지를 쓰고 또 썼다. 거울이 이쪽만을 보기 위한 거라면 유리는 저쪽을 보기 위한 것. 게다가 유리는 깨트릴 수도 있다네. 평등 세상 저쪽으로 건너가기 위한 이 처절한 싸움. 불굴의 전사는 소총과 탄띠로 무장하고 손에는 e메일로 가득 찬 노트북이 들려 있지. 스키마스크를 쓴 정체 모를 부사령관은 돈키호테와 햄릿을 침대맡에 항상 두고, 시인 옥타비오 파스,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책에 빠져 지낸다네. 암석에 핀 짜디짠 소금꽃을 곁들여 테킬라도 한잔씩 마시면서 말이야.
“승리가 달성되면 혁명은 그 자신을 배반하게 된다.” 푸엔테스의 엄중한 지적. 그래 부사령관은 좀체 승리를 달성할 대대적인 전투엔 관심이 없었다. 이 게으른 반란군은 잔잔한 미풍처럼 지속적인 저항, ‘변질과 부역과 배신’을 예방하고자 오직 ‘야성’만으로 오랜 날을 게릴라로 견뎌왔지. 신원회복 복권된 재야인사들이 줄줄이 권력의 맛에 취해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것과는 딴판으로 다른 삶이었다.
반란군 졸개도 아니면서 나는 얼굴이 새까맣게 탈까봐 솜브레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지내고 있어. 내 키보다 큰 선인장 그늘에 앉아 맹물을 꿀꺽 마시면서 눈만 댕글댕글한 마르코스 아저씨가 행여 나타날까봐 두근두근.
임의진 목사·시인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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